카르낙 신전
( 여러나라의 비참과 치욕 https://brunch.co.kr/@sonsson/27 )
이집트는 세계 최고의 문명 발상지이며, 서구 유럽 문명의 가장 원류인 나라이다. 표음, 표의, 다의 문자의 기능이 있었던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부터 표음 기능을 추출하여 페니키아 문자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한자로부터 신라의 이두가 산출되고 이후 일본의 가나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집트 문자에서 출발한 페니키아 문자로부터 유대 문명의 히브리 문자, 희랍 문명의 그리스 문자, 서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거의 동일하게 사용하는 로마 문자, 슬라브 문명권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가 나오고, 20억에 가까운 신도를 가진 이슬람 문명의 아랍 문자가 나오고, 티벳과 미얀마와 태국과 라오스 문자들의 기원이 되는 인도의 브라흐미 문자가 나왔다.
아이슬란드에서부터 칠레까지, 튀니지에서부터 파키스탄까지, 스리랑카에서부터 캄보디아까지, 베트남에서부터 필리핀까지, 지식 축적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이집트 상형문자의 후예가 사용되고 있다.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와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의 모태가 되는 유대교는 이집트의 정신적 억압과 종속을 벗어나기 위한 유대민족의 종족적 설화와 구전에서 출발하게 된다. 구약성경의 두번째 권은 그런 압도적인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을 그리고있는 출애급기이다.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과 종교적 토대가 만들어지게 된다.
유대민족이 홍해를 건너 황야로 들어가기 이미 1000년전에 쿠푸의 거대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그보다 2000년전에 이집트에는 통일된 강력한 왕조가 출현한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아직까지도 석기가 주요한 도구였으며 계급이 분화되기도 전이었다.
피라미드는 서구의 건축, 기하, 공학, 역법, 법률, 천문 등에서의 중요한 추동력이 되었으며, 좀 과장되게 이야기한다면 유럽문명의 많은 부분이 이집트에 대한 분석, 연구, 모방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출발하게 되었다.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은 이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로마제국의 여러 석조 건축물들 그리고 나아가 베드로 대성당의 기원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앞을 다투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실어날랐으며 자신들 중요 도시의 배꼽에 그것들을 기념품으로 세워두기에 몰두하였다.
어느정도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집트로부터 달력, 관개농업, 쟁기, 유리, 화장법, 문자, 파피루스, 잉크, 펜, 신발, 콘돔, 가발 들이 발명되었다. 이집트는 유럽과 근동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곡물 생산 지역이었으며 빵과 맥주의 주요 개발지 중의 하나이다. 로마제국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이집트문명의 출발부터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사랑을 나누는 날까지의 시간이 훨씬 더 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대의 이집트는 그 자체로 충분하였고 외부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존재로 수 천 년을 이어왔다. 정신적으로는 수 많은 신들과 태양신과 유일신에 대한 숭배, 죽은 영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미이라, 여러 전쟁들과 승전과 기쁨과 슬픔과 죽음과 환생에 대한 기록들. 물질적으로는 향후 로마 제국의 가장 중요한 밀 공급지가 될 정도의 풍요로움과 아직까지 축조 기술이 불가사의에 쌓여 있는 피라미드와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기 위한 역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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