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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도시는 그들이 정한 법에 따라 살아가며

칼리아스 조약

by 하얀돌

( 여러나라의 비참과 치욕 https://brunch.co.kr/@sonsson/27 )


기원전 776년 올림픽이 처음 개최되었다. 폴리스들은 제우스 신을 위한 제전을 펼치며, 4년마다 한 번 씩 자신들이 헬렌의 후손이라는 동족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가 열리는 기간에는 도시들 간의 전쟁이 금지되고 그리스 전역이 평화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었다. 올림픽은 전체 1171년간이나 이어졌고, 서기 66년 올림픽에는 그리스 문화 애호가였던 네로 황제가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폴리스들은 막강한 페르시아제국의 침입도 막아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은 기원전 499년부터 기원전 449년까지 이어졌다. 페르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소아시아의 밀레토스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유럽문명과 비유럽문명 간의 기나긴 전쟁은 시작된다.


기원전 494년 라데 해전에서 반란군을 소탕하며 페르시아는 소아시아지역 서부에서 일어난 그리스계 주민의 저항을 분쇄할 수 있었다. 기원전 492년에는 기세를 몰아 페르시아 군대가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게 되었지만, 그리스의 성스러운 아토스 산 부근에서 수 백 척의 배가 폭풍에 침몰하는 사태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두 번째 원정군이 에게해를 건넌다. 다리우스의 군대는 이전 반란군의 지원 도시였던 에레트리아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지만, 아테네를 공격하기 위해 진행된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게 되고, 또다시 그리스 정복의 목표를 중단하게 된다. 이후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힘을 집중해야만 했던 페르시아는 그리스로 눈을 돌리기 어려웠고, 그동안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전력을 키우고 폴리스간의 유대감과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되었다.


기원전 480년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수 년 간의 준비 끝에 그리스 친정에 나서게 된다. 과장일 것이라는 역사의 해석이 많지만, 헤르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정복군은 총 260만명이나 되었다. 어마어마한 대군은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설치한 2개의 부교를 건넜다고 한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형성하여 대항하였다. 좁고 험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를 비롯한 전사들에 의해 2일간이나 진격이 저지되었고, 페르시아 육군은 우회로를 통한 공격을 시도하여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결사대를 몰살시킬 수 있었다.


페르시아는 거침없이 그리스 본토를 유린하며 아테네에 입성하였지만 아테네의 시민과 주요 전력은 인근의 살라미스 섬으로 이미 소개되어 있었다. 좁은 해협에서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덩치 큰 대규모 페르시아 전함들은 오히려 불리한 요소가 되고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된다. 크세스크세스는 후방에서의 역습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처남이던 마르도니오스를 원정대 사령관으로 지정하며 그에게 일부 군대를 맡기고 난 후 바다 건너 아시아로 퇴각하였다.


기원전 479년 마르도니오스를 대장으로 한 페르시아 군대는 다시 한 번 공격을 펼쳐 아테네를 점령하게 되지만, 플라타이아 전투에서는 본인이 사망하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고, 비슷한 시기 페르시아의 해군 역시 무너지게 되면서 페르시아가 더 이상 폴리스들에 대해서 압도적인 공세를 펼치기는 어려워졌다.


이후로도 30여 년 간 두 세력이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지만 분명한 결론은 나지 않았고, 기원전 449년경이 되어서야 칼리아스 조약을 통해 긴 전쟁의 마침표가 찍혔다.


"모든 그리스 도시는 그들이 정한 법에 따라 살아가며, 페르시아의 군대는 사흘의 여정보다 더 가까운 거리로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페르시아 전함은 지중해의 동쪽 경계선을 넘는 항해를 자제한다. 이 내용이 페르시아의 왕과 장군들에 의해 지켜진다면,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왕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로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친 폴리스들은 대제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공을 취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으로 고취되었다. 아테네가 그 중심에 있었고 각 폴리스들로부터 걷어들인 군자금은 아테네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 되었다. 아테네의 교만은 점차 하늘을 찌르게 되고, 마침내 스파르타, 코린토스 등이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을 적대시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패자와 승자로 나뉘게 되고 영광의 그리스는 자중지란으로 침체에 빠지게 된다.


기원전 371년 스파르타는 다시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에게 패배함으로써 헤게모니를 잃게 되고, 테베 역시 머지않아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마케도니아에 패배하여 패권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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