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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가해지는 모욕과 차별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400여년

by 하얀돌

( 여러나라의 비참과 치욕 https://brunch.co.kr/@sonsson/27 )


반 그리스인이자 반 야만족으로 천대를 받던 마케도니아는 짧은 기간 그리스 전역과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모두 정복하여 아드리아해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오랜 시간 겪었던 전쟁 경험으로 페르시아의 강점과 약점, 전략과 전술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리스 북부의 소국은 페르시아의 지도부를 꺾음으로써 페르시아가 축적해 두었던 엄청난 영토를 비롯한 자산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거대한 불길이 들판과 숲과 산맥을 불태웠지만 불꽃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어느 순간 사그라들 듯, 알렉산드로스 3세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제국의 수도가 될 예정이던 바빌론에서 요절하는 때, 제국은 부하 장군들에 의해 순식간에 분열되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제국의 각 지역은 디아도코이라는 군벌들에 의해 분할되고,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마케도니아, 아나톨리아, 이집트의 여러 지배자들에 의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겨지고, 파괴당하고, 정복당하고, 지배당하게 되었다. 가끔 자치권을 인정받기도 하였지만 폴리스들의 존재감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기원전 146년 새로운 강자로 일어나던 로마제국에 의해 여러 폴리스들의 본보기로 코린토스가 초토화 되고, 북쪽으로 마케도니아 지역까지 정복 당하게 된 그리스는 전역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기원전 88년에 일어난 반란으로 그리스는 다시 한 번 로마의 군화발에 먼지가 되도록 짓밟히게 된다. 그리스 문화를 애호하는 로마 황제들 때문에 "정복된 그리스가 자신의 정복자를 정복했다"는 말도 생겼지만, 많은 로마인들은 그리스를 피지배민족으로 경멸하였다. 그리스인들에게서 자주와 독립과 명예는 사라지고 기나긴 예속과 속박과 불명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 기간 내내 그리스는 제국의 중요한 지역의 하나였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그 역할이 점점 더 커지기는 한다. 동로마에서는 로마어를 대신하여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고, 카톨릭에 대항하여 동방 정교회가 주류가 되는 등 그리스가 동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중추 세력으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어디까지나 로마의 연장이었고 그리스인은 제국의 여러 신민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146년 로마에 복속된 이후 기원후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16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구성원이자 동시에 피지배민이었다. 1453년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천 년 이상을 이어오던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명성을 잃고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정복된다.


그리스는 지배 세력의 교체에 따라 자연스럽게 투르크의 통치를 받게 되는데, 동로마 시대와는 달리 현저하게 그 지위가 저하되었다. 말과 문화와 관습과 인종과 종교가 다른, 전혀 이질적인 투르크에 의해 모욕과 차별이 그리스 민족에게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각지에서 꾸준히 반란을 일으키며 투르크에 저항하였지만 너무나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로 목표를 쟁취하기는 요원하였다. 저항과 그에 대한 분쇄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수 백 년이 지나갔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 낭만적이자 동시에 현실적인 목적으로, 투르크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리스를 지원하고, 그런 대외 환경의 변화에 힘 입고서야, 그리스는 투르크의 압제에서 벗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821년 시작된 그리스 독립전쟁은 1832년 런던 회의를 통해,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차남을 왕으로 하는 그리스 왕국이 승인되면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400여년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리스의 중요한 일부였던 크레타는 독립영토에서 제외되었고 1913년이 되어서야 그리스의 영토로 합쳐질 수 있었다. 그리스 땅의 무슬림은 투르크의 땅으로 투르크 땅의 그리스인은 그리스로 송환되기도 하였다.


로마의 정복으로부터 2000년, 투르크의 정복으로부터 400년, 길고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리스는 마침내 그리스 스스로의 이름으로 자신을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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