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란거리
( 여러나라의 비참과 치욕 https://brunch.co.kr/@sonsson/27 )
영국은 수 백 년의 압제를 남겨두고 아일랜드를 떠날 때 북아일랜드라는 목에 가시 같은 분란거리를 남겨 두었다. 인도를 떠나올 때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과 스리랑카를 쪼개 두고 나왔다. 이라크에서 쿠웨이트라는 선을 그어 두고 나왔다. 무슬림의 바다에 이스라엘이라는 신생 말뚝을 박아 두었다. 불국토인 미얀마에 로힝야라는 이슬람 부족을 옮겨 놓기도 했다. 스페인에는 지브롤터를 새겨 두었다. 조선에서는 거문도에 포트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2년간 머물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보호국이던 경험이 있는 나라들은 몇 개의 손으로도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미국, 캐나다, 가이아나, 그레나다, 도미니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가나, 감비아, 나미비아, 나이지리아, 남아공, 레소토, 말라위, 모리셔스, 보츠와나, 세이셸, 스와질란드, 시에라리온, 우간다, 잠비아, 카메룬, 케냐, 탄자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피지, 투발루, 통가, 나우루, 바누아투, 사모아, 솔로몬 제도, 몰타, 키프로스, 이스라엘, 이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이집트, 요르단, 예멘, 아랍 에미리트, 에리트레아, 바레인, 수단, 남수단, 수리남,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리비아, 팔레스타인, 아일랜드. 그리하여 해가 지지 않았던 유니언잭.
축축하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섬나라의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이빨이 빠지도록 버티고, 상대에 직접 대항하기 어려울 때는 뒤로 숨었다가 도둑같이 재화를 탈취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나도 같이 따라 사고, 같이 사기 어려울 땐 못 사게 훼방 놓고, 이러하기를 지치지 않게 반복했다.
놀부의 심술이다. "오귀방에 이사 권고, 삼재든 데 혼인하기, 동네 주산 팔아먹고, 남의 선산에 투장하기, 길 가는 과객 재울듯이 잡았다가 해가 지면 내어 쫓고, 초상난 데 노래하고, 남의 노적에 불 지르기, 가뭄 농사에 물 빼버리기, 불난데 부채질하기, 길 가운데 허방놓고, 장님 의복에 똥칠하기, 초상집 상주 보듬고 춤추기, 여승보면 겁간하고, 아이 밴 여자 배통차기, 우는 아이 똥 먹이고, 똥 누는 아이 주저 앉히기, 물동이 인 여자 귀 잡고 입 맞추기, 만만한 놈 뺨치기, 고단한 놈 험담하기, 잠든 놈 팔에 벼락불 놓기, 장독간에 돌 던지기, 약한 노인 엎어뜨리기, 제사 술에 개똥 넣고, 귀먹은 사람한테 욕질하기, 소리꾼 소리할 때 잔말하기"
영국의 바다로의 진출이 물론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긴 시간 배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잠정적인 노예라 해야 할 선원들. 이들을 모집하는 것부터 이미 난관이었다. 선원들에게 노출된 위험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이가 빠지고 몸이 붓고 혈뇨와 혈변을 보다 죽게 되는 바다 사나이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괴혈병, 대양의 집채 만한 파도와 폭풍,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물길과 암초들, 부정확한 지리 정보에 따른 표류, 공격적인 미지의 인종들과의 조우, 바람이 불지 않아 오도가도 못한 채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무풍지대.
대항해시대에는 강제납치수준으로 어리숙한 시골뜨기들, 부랑인들, 죄수들을 선원으로 충원하는 행태가 다반사로 벌어졌다. 선원들은 장거리 항해에서 폭풍우로 배가 침몰하게 되면 대부분 사망하게 되고, 특별한 사태가 없이 순조롭게 항해를 마치더라도 1/4에 가까운 인원이 이러저러한 사유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수치는 노예선에 비참하게 실려가던 흑인 노예들의 사망율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일례로 1740년 조지 앤슨이 이끈 대규모 선단은 1,955명이 본토를 출발하게 되지만, 4년이 지나 귀국하였을 때는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 997명, 질병으로 인한 사망 320명, 전투로 인한 사망 4명을 제외한 634명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초기 식민지 정착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타운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잡리 잡은 최초의 영국 식민지들 중 하나였다. 1607년 이주민들이 이 곳에 도착한 이래 굶주림, 이주자들 내부의 갈등, 인디언들의 습격 등으로 정착 과정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1610년이 되었을 때는 300명의 이주자 중에서 60명만이 살아남았다.
범위를 늘려보면 1624년까지 영국에서 북미대륙의 버지니아 지역으로 총 14,000여명이 이주하였지만, 조사가 이뤄진 1624년 시점에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132명 밖에 되지 않았다. 영국으로서도 자신들의 피와 살을 갈아 넣으면서 대항해와 식민지와 제국의 건설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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