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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지 Aug 25. 2024

아무리 그래도 화장할 시간도 없나?

씻을 시간도 없다.

대학생 때 일이다.

시내 대형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는데, 한 부부에 시선이 갔다.


아기띠를 맨 엄마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머리를 질끈 묶고, 편한 옷차림으로 남편과 있었다.


동네마실도 저렇게 안 나올 거 같은데라고 생각한 엄마의 행색을 보고 다짐했다.


'난 저렇게 안 살아야지.'




대학생 때, 시험기간이어도 화장했다.

사회초년생 때,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했다.

데이트 때,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화장했다.


풀메이크업까진 아니더라도,

선크림, 파운데이션, 눈썹 특히 입술 색이 없으면 안 됐다.

가볍게, 데일리 메이크업은 필수로하던 내가.


육아를 시작하고는

아침에 씻 못할 때가 더 많다.


아기가 잘 때, 몰래 후다닥 양치와 세안하면 다행이었다.

아기가 울면 기초 화장품도 놓치기 다반사.

그러니 산책 나가면 선크림 바를 시간도 없어, 모자를 깊게 눌러쓰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순간, 남편과 밖을 나서도 민낯인 경우도 생겼다.

그때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 한 단어밖에 안 떠올랐다.


"진짜 아줌마 같다..."


바쁜 육아로 불균형 식사를 하고,  안 그래도 임신으로 찐 살 빠지지도 않는데, 살은 더 쪘다.

빵빵하던 가슴은 물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유두의 빅파이는 여전하고, 여기저기 튼살 물줄기와 안 맞는 옷들은 나의 자존감을 바닥 쳤다.


출산 전후, 똑같은 옷을 입어도 느낌이 달랐다.


분명 같은 옷인데,

출산 전에는 아가씨 같던 내가.

출산 후에는 아줌마 같다.


그제야, 내가 본 서점의 엄마가 이해되었다.

안 꾸미고 싶어서 안 꾸민 게 아니고, 못한 거구나.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도, 여잔데...

나도 예쁘게 꾸미고 싶다.


오늘따라 이 노래가 생각난다.


장나라 - 나도 여자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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