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나의 가치가 흔들릴 때

무너질 뻔한 날의 단단한 위로

by 스크류바

구시대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역할이라는 믿음을 완전히 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난임의 시간을 걷는 내게 더 큰 짐이 되었다.


남편은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을 역할을 다한다.

그에 비해 나는, 아내로서

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맞벌이니까,

경제활동으로 내 몫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봤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시험관 시술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리고 임신까지 되지 않는다면?"


그 질문이 또 다른 불안을 끌고 왔다.

직업도 없고 아이도 없는 내가,

무엇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남들이 보는 시선에 내 존재를 맞추던 습관,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존재처럼 여겨왔던 나


그 모든 조건들이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

난임의 시간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일을 하지 않아도, 임신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괜찮다는 말.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는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나의 무가치함을 말하면 눈시울을 붉히는 나를

남편이 조용히 안아주며 말했다.


"그 시간도, 당신도 의미 있어.

아이를 갖기 전에

당신이 당신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일 거야."


그 말은 내 마음을 조용히 다독였다.


생명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나를 잃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일 수 있다는 믿음


이 확신은,

나를 겁먹게 하던 피로와 두려움을 조금씩 밀어냈다.


내가 나의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언젠가 만나게 될 아이에게도,

온전한 가치를 심어줄 수 있을 테니까


이제는 감사하다.

내게 이 시간을 허락해 준 남편에게,

그리고 이 시간을 견디는 지금의 나 자신에게도.






이전 03화[난임일기]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맘껏 웃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