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삽니다>
곧 있으면 새벽으로 넘어가는 늦은 밤이었다.
나는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집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다. 생각이 많아지면 버스정류장에 앉아 오가는 버스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방금 지나간 버스에서 내린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나를 보고서는 웃으며 뛰어올 때까지……․
“와 대박!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이지 맹세컨대,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데다가 섣불리 추측하기에는 내가 기억력이 몹시 나쁜 사람이었다. 자칫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친구도 놀란 눈치였다.
“나 기억 못 해? 우리 5학년 때 단짝이었잖아! 맨날 너희 집 가서 감자 깎고 그랬는데.”
감자를 깎았다는 대목에서 확신이 생겼다. 너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영현이잖아.
초등학교 때 학교가 끝나면 회사에 다니는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친구를 불러서 집에서 놀고는 했었다. 둘이 놀다 배고파지면 집에 있는 감자를 깎아서 튀겨 먹었다. 아주 맛없는 감자튀김이었다. 영현이는 자주 우리 집에 와 맛없는 감자튀김을 해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영현이는 주방에 서서 하염없이 감자를 깎고 있는 어린이였다.
수능이 끝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애는 여전히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문‧이과가 나누어져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시간 속을 사는 동안 나는 안녕하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좀 그런 게 있었다. 밥 같이 먹는 친구들 내지는 무리 같은 것. 보통은 새 학년이 되면 3월에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우연히, 혹은 원래 알던 사이라서 밥을 같이 먹게 된 사람들과 학년이 끝날 때까지 밥을 같이 먹었다. 그들이 단짝 친구는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밥 혼자 먹을 걱정이 없다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나도 그런 게 있었다. 있다 없어졌다. 내가 속한 무리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던 친구가 나를 등져버렸다. 이유는 하나였다. ‘넌 점심을 자주 거르고 혼자 도서관에 가버려서 짜증 난다.’ 그 정도-. 나는 그 정도의 이유로 혼자가 됐다. 5월이었고, 이미 다른 친구들은 저마다의 무리에 속해있었다. 어디 다른 무리에 낄까 노력도 해봤지만, 다들 썩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밥을 혼자 먹게 됐다고 해서 밥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럼 진짜 지는 거니까. 급식실에 들어가면 300명 정도가 들어가 있는 급식실을 쭉 훑었다. 혹시나 어디 혼자 먹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 가서 말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홀로 급식실을 오가던 1년간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전교에서 혼자 급식실에 앉아있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영현에게도 무리가 있었다. 있다 없어졌다. 영현은 ‘빌었다’라고 했다. 나를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영현은 다른 친구를 찾았다. 하지만 끝내 안녕하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같은 감정, 다른 기억을 가진 우리가 다시 만났다.
“그때 혼자였던 우리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영현이 말했다.
만약이 있다면.
우리가 그 시절 어느 시점에 만나 서로의 처지를 알아보고 함께 밥을 먹는 친구가 되었더라면, 그러면 좀 괜찮았을까. 7년이 지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밥을 혼자 먹지 못한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는 게 뭐 그리 어렵겠냐마는, 나에겐 끔찍하게 어색한 시간이다. 나는 어딘가 저편에 그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살았다.
하지만, 만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곳이었다. 친구의 눈치를 보고,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성적의 눈치를 보는 날들이었다. 상대방에게 따듯한 말을 전하고, 애틋한 배려를 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애와 내가 짠내 나는 동맹을 맺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른이 되어 마주 보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영현이는 열두 살의 그 어린 마음 그대로 자랐다. 그 순수하고 예쁜 마음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그냥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은, 어색하고 민망해서 하지 못했던 말은,
고생했다. 그 한마디.
나도, 너도.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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