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이 멈췄다.

<대치동 삽니다>

by 수레 soore


이 거리를 지나다닌 지 15년, 이렇게 한적한 풍경은 처음이다.


학교도 회사도 심지어는 길거리 음식점도 명절에는 쉬기 마련인데, 이곳 학원가는 논외였다. 소형학원 대형학원 할 것 없이, 추석이면 추석이라고 설이면 설이라고 나름의 이유를 갖다 붙이며 특강을 열어댔다. 명절마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영문법 끝내기 특강>, <미적분 집중 특강>. 반복되는 ‘끝내기’와 ‘집중’ 탓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은 3년째 대전 사는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그랬던 대치동이 멈춰버렸다.





2020년 8월 29일, 주말도 잊은 강남구청 공무원이 독서실을 찾아왔다. 예상한 대로 집합 금지명령이었다. 8월 31일 00시를 시작으로 9월 6일 24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의 집합 행위가 금지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전달하고는 별다른 설명 없이 학원명, 직위와 서명이 칸칸이 채워져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ㅁㅁ 독서실 직위: 알바생 (서명)


직위란에 '알바생'을 써넣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태풍이 불고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에도 “나 학원가는 길에 죽는 거 아니야?”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이야기하며 웃었던 기억뿐인데. 온 세상이 멈춰도 이곳은 영원히 해당사항 없음인 줄만 알았는데.


독서실 카운터에 앉아있는 10시간 동안 스무 번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중 열 번은 같은 질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6일로 상황이 진정될 것 같지가 않은데, 집합 금지명령이 연장되어 휴업이 연장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알 수가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너나 할 것 없이 당황한 것이었다.


KakaoTalk_20200902_202053335.jpg 구청 발 공문은 처음 본다.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온 그날 밤, 과외 의뢰가 들어왔다.

때마다 학생의 진도 상황을 체크하고, 그날그날의 숙제를 내주고, 더해서 영어 독해를 봐줄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학교도 학원도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경각심을 잃은' 아이가 걱정된 학부모의 다급한 요청이었다. 나의 개강이 다가온 이유로 더 이상의 알바는 부담이 될 것 같아 그 제의는 거절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학원이 멈춰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


'카공족'이 테이크아웃만이 가능해진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제과점에 모여들고, 운영이 중단된 술집 대신 편의점이 북적북적해진 것처럼, 학원이 문을 닫으니 과외가 시작된 것이다. 모두에게 최선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신에게 최선을 찾아.


누구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오늘에서, 그저 모두가 무탈하길 바랄 뿐이다.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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