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삽니다>
"아-. 오바다."
오늘도 바지가 작다. 누가 봐도 작아 보인다. 어찌어찌 단추를 잠가봐야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할 것이다. 이 바지는 희망이 없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찌푸린 지 7분, 아니 7년째, 거울 앞에선 매일 같은 표정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2014년 봄, 새벽 두 시의 닭강정이었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아 오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두 시까지 독서실에 붙어있는 것밖에 없었다. 새벽까지 집중도 잘되지 않는 독서실에서 스스로를 괴롭히다 집에 들어가면 식탁에는 꼭 먹다 남긴 무언가가 있었다. 먹다 남긴 피자, 먹다 남긴 도넛, 먹다 남긴 닭강정.
그것들은 guilty pleasure 그 자체였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었음에도 조금도 뿌듯하지 않았던 오늘 하루의 끝, 그 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깨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가 없으니 꾸역꾸역 눈을 뜨고 있는 수밖에.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다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먹다 남긴 피자, 먹다 남긴 도넛, 먹다 남긴 닭강정. 짭짤하고 달짝지근한 것들을 입에 넣으면 비로소 이 하루가 막을 내리는 것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살이 붙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불어났다.
그때 찐 살은 꼭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처럼 내 몸에 남아있다. 거대하고 자연
스러운 흉터처럼.
body positive! 네 몸을 사랑해라!
세상의 기준에 너를 맞추지 마!
그래, 내가 데리고 사는 내 몸인데. 내가 사랑해 줘야지 누가 날 사랑해주겠어?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사랑했다가,
be healthy! 한 번 사는 인생,
건강하게 예쁘게 살아라!
네 외모가 너를 가려버리지 않도록
다들 잘만 빼던데, 내 살은 왜 빠지지도 않는 거야. 다른 날은 내가 미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도대체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 살을 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나는 살을 빼고 싶은 거야 이대로 행복하고 싶은 거야.
떡볶이 앞에선 행복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샐러드 앞에서도 행복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내가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습관적으로 고개를 드는 죄책감과 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스멀스멀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뿌듯함.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생각을 매 끼니마다 하며 살고 있다.
나는 답을 낼 수 있을까?
음식을 음식으로, 배부름을 배부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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