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삽니다>
"수빈씨,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아요."
올게 왔다. 대타를 세우면서도 원장님의 눈치를 보면서 꽤나 오래 버텼는데, 이번엔 공백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요? 제가 대타를 자주 세워서 그러세요? 요즘 시험일정이 불규칙적이라……"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학원이 없어질 거예요. 미안해요."
이렇게 두 번째, 두 번째로 학원이 없어졌다.
첫 번째로 학원이 사라졌을 때, 나는 그곳의 마지막 조교였다. 정확히 말하면 학원이 아니라 선생님이 사라진 것이었다. 학원은 장소 제공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대치동 유명 1타 강사였다. 선생님은 커다란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를 하고, 다른 날은 다른 학원의 커다란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를 했다. 금요일 7시 타임- ○○학원, 토요일 4시 타임- ◇◇학원 이렇게.
그곳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 갓 대학에 입학한 또래 조교들과 일할 수 있었고, 바로 작년까지는 수강생으로 앉아있었는데 지금은 조교로 앉아있다는 게 신기했다(학생들이 가끔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돈도 많이 벌었다. 최저시급보다 500원 정도 많은 돈을 챙겨주셨는데 작정하고 다른 조교들의 대타를 해주기 시작하면 한 달에 100만 원도 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알바가 없었다. 원래는 수능이 끝나고 한 달쯤 뒤부터 그다음 수능이 일주일 남은 날까지 약 1년간 일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다음에도 쭉 일을 하고 싶었다. 조교 중 몇 명은 2년 동안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실장님께 살갑게 웃고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혹시나, 내년에도 써줄까 해서. '
수능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계획이 모두 무산됐다는 걸 알았다. 건강에 무리가 온 선생님이 은퇴한다는 소식이었다. 예상을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다. 1200명의 실강 학생,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인터넷 강의 학생들을 어깨에 짊어진 선생님이었다. 심리적 부담과 육체적 부담이 이어진 지 오래였다. 은퇴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대치동 사거리 영어학원에서 보조강사로 일할 때였다. 나는 주로 빈 강의실에 앉아 미국 교과서를 가지고 리딩과 리스닝 영역의 시험지를 만들었다. 시험지를 만들고 있으면 초등학생 아이들이 숙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러 왔다. 나는 질문을 받아주고, 시험지를 만들고, 그걸 채점해 돌려주고 다시 질문을 받았다.
시급을 만 원이나 주는 좋은 알바였지만 나 말고 다른 강사에게 자주 대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불규칙적인 시험과 학회 일정 때문에 자꾸만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만 원장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수빈씨,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원을 운영하기란 그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을 뿐이었다.
원장님은 내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경쟁이니 수지 타산이니 하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간단히 얘기해서, 망한 거라고 했다. 분명 아이들이 많은 학원이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건물 하나에 열 개가 넘는 영어학원이 있는 곳도 있었다. 원장님의 말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아이들만 치열한 곳이 아니었다. 대치동에서 부딪치는 꿈들 중에는 대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삼 내가 서있는 동네가 거대하게 느껴졌다. 동네 돌아다닐 때면 눈 앞을 가득 메운 학원을 바라보며 원망 어린 시선을 던지곤 했었다. 학생이 곧 돈이라는 해묵은 공식이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우리 모두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구독으로 응원해주세요
<대치동 삽니다>
매주 수요일 / 토요일 연재됩니다.
contact: soobin3466@naver.com
더 읽어보기
https://brunch.co.kr/@soobin3466/20
https://brunch.co.kr/@soobin3466/19
https://brunch.co.kr/@soobin3466/17
https://brunch.co.kr/@soobin3466/12
https://brunch.co.kr/@soobin3466/15
https://brunch.co.kr/@soobin3466/14
다른 채널: 네이버 포스트 https://post.naver.com/soobin3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