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뤄줄게, 대치동 드림

<대치동 삽니다>

by 수레 soore


대치동의 괴담은 진부하다.


전교 1등을 시기한 전교 2등이 이윽고 전교 1등을 학교 옥상에서 밀어버렸다거나, 시험기간에 몰래 그의 텀블러에 약을 타 시험을 볼 수 없게 한다거나ㅡ. 그런 소설 같은 이야기는 없다. 그보다 덜 자극적인 방향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소문이 들려오긴 하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늘 바람처럼 이런저런 괴담이 떠돌 뿐이다.


하지만 비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극은 아주 평범하고 지겹게 퍼져있다. 꿈을 꾸는 모든 이가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꿈 많은 엄마의 눈에, 찬영이는 특출 나게 똘똘한 아이였다. 엄마의 눈을 증명이라고 하듯 찬영이는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다. 찬영이는 엄마의 자존심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원에 앉아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다. 같은 교실에는 초등학교 3학년도, 중학교 3학년도 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찬영이는 뒤처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커리어 대신 찬영이를 선택했다. 찬영이를 집에 혼자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너무나 똑똑하고 앞날이 창창했다. 엄마가 옆에 있어준다면 그 어떤 것도 꿈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꿈 많은 엄마는 찬영이의 꿈을 선택했다. 이제 찬영이가 꿈을 이뤄줄 차례였다.


KakaoTalk_20200829_164924257.jpg 한티역 3번 출구, 학원가 초입


대전에서 강남으로 온 가족이 올라왔다. 아이들은 학교를 옮기고 아빠는 가족에게서 멀어졌다. 대전과 서울은 너무 멀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나중 문제였다. 대치동은 꿈을 이뤄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찬영이는 기대에 완전히 부응하며 전교 5등 안쪽을 유지했다. 엄마의 기쁨은 커져갔다. 욕심은 그 마음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학원을 8개씩 다니던 찬영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찬영이는 이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친구의 부탁으로 찬영이를 만났다. 친구는 찬영이가 다니는 8개의 학원 중 하나에서 보조강사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찬영이가 꼭 시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잠도 자지 않고 게임에 빠져든 찬영이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엄마 몰래 피시방에 갈 거라며 천진하게 웃던 중학생이었는데, 꼭 가방을 든 좀비처럼 눈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찬영이를 만나자마자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가 또 뭘 시켰어요?”


‘또 과외야?’라는 듯 처음 보는 나를 두고 벌써부터 지겨워하는 찬영이는 열여덟 살 같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냐고, 재밌게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볼 때도 그랬다.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 겨우 내놓은 답은 회사원이었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가장 미운 답을 찾아낸 듯했다. 찬영이의 엄마는 찬영이가 의대를 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를 책상 앞에 앉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뭐야?”


아무 이유도 없이 하루 온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영이가 하루 종일 학원에 독서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이유.


“회사원이랑 똑같은 거예요. 돈 벌려고 일하는 거잖아요. 저는 게임하려고 공부해요. 내가 이만큼 공부했다고 엄마한테 가서 보여주면 몇 시간 동안이라도 게임할 수 있게 허락해줄 테니까.”


괴로울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하기 싫은 공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찬영이는 절대 그 끈을 놓지 않을 것이고 현실성 없는 조언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찬영이의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찬영이가 스스로의 원동력으로 공부할 수 있게 꽉 쥔 그 손에 힘을 조금만 풀어달라고.


네 시간의 상담은 원점으로 자꾸만 돌아왔다. ‘내 아들은 내가 잘 안다’가 핵심이었다.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불과 몇 해 전 공부 정말 잘한다 인정받던 아들이 그리운 것이었다. 변해버린 아들이 낯설다고, 자꾸만 컴퓨터 앞에 가서 앉는 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선생님이 이야기를 잘해보라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치고 싶었다.


찬영이는 이상한 괴물이 된 게 결코 아니다.
단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을 뿐이야.
그것도 10kg쯤 되는 거대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매일매일이 전쟁터가 된 찬영이의 집은 분명 비극이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가득한 그런 비극.



American dream
[명사] 미국에 가면 출신 지역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성공의 기회가 열려있어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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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 토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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