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찍을 수 있는 용기

<대치동 삽니다>

by 수레 soore


다들 휴학 한 번씩 잘만 하던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휴학을 하고 뭘 하고들 있다는 말인가!


나는 가만히 집에 앉아있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을 텐데, 이 경주에서 벗어난들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다는 걸까. 그렇다고 그저 이렇게 졸업을 맞이할 순 없었다. 내 인생은 브레이크가 박살난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내려오듯 혼자서 속도를 내기 바빴으니까.


그래서 핑계가 필요했다. 휴학할 핑계. 그리고 인턴은 아주 완벽하게 적당한 핑계가 되어줄 것이었다.




해외인턴만 지원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외국에 나가면 행복할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과거의 해외생활이 가져온 환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긴 여행과 짧은 정착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느꼈었다. 여행지에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침대에서 눈을 떠도 매일이 새로웠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4학년 취준생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냥 내 생각이 그랬다. 보장된 미래가 없는 문과생은 스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해외인턴이 필요했다.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언제나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충격과 공포의 서류탈



반복되는 불합격은 초심을 닦아내고 조급함을 가져왔다. 최종면접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엄청난 스펙들을 들고 왔다. 인턴 면접에 세 번의 인턴 경력을 가져오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이 었다.

나는 분위기에 압도되고 옆 사람에 압도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면접장에 앉아있는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부족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떤 휴식도 가져갈 자격이 없는 사람.


잘 쉬고 잘 일하기 위해 찾기 시작한 인턴이 그 목적을 잃은 건 네 번째 인턴에 지원했을 때였다. 더 이상 합격을 기대하지 않고, 꼭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인턴 자리를 찾아 헤맸다. 나의 부족함을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이.


여덟 번째 인턴에 떨어졌을 때, 9개월의 발버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2학기 휴학 신청 마지막 날이었고, 인턴은커녕 알바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나는 핑계를 찾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온전한 선택 그 자체였다.


여기 이 자리에서, 쉼표를 찍을 것인가.


남은 학점을 생각하고, 다가오는 공채를 생각했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학점포기 제도와 코로나로 인한 학점 기준 완화, 이번 학기로 받아낼 수 있는 최종 학점을 계산했다.

남들은 다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자잘한 스펙들을 저울질했다.


무엇도 내게 휴학이라는 결론을 내려주지 않았다. 휴학 신청 페이지 앞에서 세 시간이 지났고, 시간은 열두 시를 넘겼다. 나는 결정하지 못했다. 판을 뒤집지 못했으니 그저 흘러가던 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넣어놓은 등록금과 야무지게 해결한 수강신청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끝내 용기 내지 못했다.


인생에서 딱 6개월, 그 정도 쉬어가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달리고 있는 친구들이 무서웠다. ‘쉬었다’는 한마디로 설명될 나의 공백과 그 시간을 지적할 면접관이 두려웠다. 아니, 휴식을 핑계로 만들어낸 6개월의 공백 속에서 나 스스로가 끊임없이 마주할 자괴감과 조급함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어떻게 쉬는지도 모르면서, 휴학을 하겠다니. 그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어.


내 생에 가장 하찮고 힘든 결정이었다. 선택의 후유증은 길었다. 지금도 그 안에 있으니까.





*이번 달은 개인 사정으로 쉬어갑니다:)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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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 토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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