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TWO> #지형 ④
지하철역과 가장 가까운 1번 후문쪽에는 세 개의 조립식 간이시설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들 건물은 이제 각각 R, T, Z동으로 불리운다. 후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Z동에는 중고장난감판매점이 입주해있다. 이 단지가 활용 계획이 없이 유예적 상태에 놓여있을 때, 이 중고장난감판매점은 변변한 키즈카페 하나 없는 지역의 빈구석을 노리고 들어선 상업시설이다. 이 상점의 운영자는 단지운영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 운좋게 운영권을 얻었다. E구를 찾아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수완 좋은 지역사업자가 시세 대비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운영중이다. 이 상점에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이나 획기적인 할인 이벤트, 육아용품 플리마켓 등이 매주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그 덕인지 단지의 쓰임과 별개로 가족단위 이용객들을 단지를 많이 찾았다. 이 판매점과 나란히 들어선 T동과 R동에는 각각 북파공작전우회와 M노동조합총연맹 S시지부 등이 입주해있다. 이들은 오래 전 이 터가 장소성을 상실한 뒤부터 쭉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두 기관은 중립지대에서 망명한 듯 들어와 서로를 못 본 채 하며 모두에게 잊혀진 채 이곳에 부득불 존재하는 사람들로 취급받았다. 2004년 S시가 이 땅을 매입한 후 시장이 두 번 바뀌고 계획이 세번째 뒤집히는 동안 쭉 기어코 존재했던 이들은 기실 이곳의 터줏대감이라 볼만했다. 북파공작전우회는 이 단지가 위치한 E구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차원으로 자원봉사와 후원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그리하여 이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는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시장이 바뀌고 계획이 새로 수립될 때면 어김없이 이들은 쫓겨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파공작전우회와 지역사회가 한자리에서 한목소리를 내게 되는 순간도 있었는데, 6월에 있었던 센터 개소행사에서였다.
센터 개소행사는 A동 테니스장 앞 야외공원에서 일조량을 풍부히 받은 나무들이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계절에 열렸다. 그때는 한창 메르스 라는 감염병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해외탐방 일정을 취소하고 행사에 참석한 시장 Y와 센터장 K가 나란히 서서 테이프를 커팅했다. 이 단지의 메인 출입구에는 창의테크밸리 라는 세로로 긴 간판이 세워졌고 그 주변으로 빙 둘러선 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동물실험으로 죽어간 동물들의 영혼을 기리는 인형극이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에서 벌어졌다. 지역신문에는 숲 속 알록달록한 모형 인형을 배경으로 밝은 얼굴의 사람들이 가득 실렸다. 그러나 지면에는 담기지 못한 사정이 있었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날을 대게 그로테스크하게 기억했다. 그래서 이 날이 금방 잊히길 희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신문지면 그 이면에는 공식적으로 초대받은 인원 200여명 외에도 초대 받지 않은 삼사십의 무리들이 함께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동네주민이라고 했고 그보다는 지역개발업자와 상인회의 몇몇 사람들과 이 단지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북파공작전우회의 회원들이 뒤섞여 구성되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배제와 소외의 한을 안고 누군가에게 된통 뒤통수라도 맞은 사람처럼 길길이 뛰어댔다. 이들 무리는 시장 Y가 등장하자 이때가 기회인 것처럼 몰려들어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 시장이 지역경제를 말아먹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함께 작당이라도 한 사람들처럼 “Y 시장 물러가라”라고 누군가 선창을 하면 물러가라 물러가라 하고 라고 따라 외쳤다. 빨간 글씨로 피켓을 만들어 흔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의 공감각과 더불어 시장 Y의 시청각까지 사로잡았다. 시장 Y는 그들 무리와 직접 대면하여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양해를 구했고 그 외 여타의 말이 나눠졌으나 그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시장 옆에서 아이 마냥 어찌할 줄 몰라했던 센터장K의 행색이 오래토록 전해졌다. 이들은 물러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아무 일 없는 사람들처럼 행사장 곳곳을 배회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경영지원실장은 몇 날 며칠 그날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개소 행사를 전후로 담벼락으로 고밀도 개발을 요구하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떼어졌다를 반복했다.
그 무렵 창의센터는 조용히 세상을 바꿀 혁신가 1,000명의 요람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걸고 개소 전후로 입주기업을 모집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센터 개소 후 창의테크밸리에 새로 입주한 기업과 단체는 총 62개에 달했다. 정주인원수로 치자면 350여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 목표인원수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3만평의 넓은 부지였지만 당장 쓸만한 건물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역시나 M 국장은 내내 성에 차지 않는 티를 냈다. 본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A동과 신임 시장의 핵심 정책 사업을 관장하는 중간지원기관 몇이 함께 입주해있는 H동, 과거에는 구내식당으로 쓰였고 현재는 복합 커뮤니티 시설로 쓰이고 있는 P동, 우편물취급소 등 편의시설이 위치한 U동과 보건의료 연구동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청년지원 단체와 스타트업 오피스 기능으로 사용중인 V동 그리고 R, T, Z동 등을 제외하고 당장에 사용할 수 있는 건물도 몇 개 없었다.
영문으로 불려지기 전 이 단지의 건물들은 숫자로 표기되었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8동까지 주목적과 부목적으로 나눠진 크고 작은 건물 총 25채가 있다. 동별 호수는 위치와 관계 없이 뒤죽박죽 붙여졌고 이가 빠진 듯 빈 숫자도 있지만 각 건물마다 숫자가 붙여진 연유는 알 길이 없었다. 이곳의 관리자들조차 건물번호 전체를 암기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유실된 공간들은 현재에 이르러 건물의 노후화로 철거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지만, 13동을 옛지도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두고는 13일의 금요일을 연상하며 서양의 불길한 숫자가 빠졌다고 넘겨짚으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이 25개 시설물 중 몇 개는 시장 Y의 등장으로 철거될 위기를 모면하고 공간의 서사적 가치를 남겨두고 특색있게 리모델링해 재사용하는 것으로 살아남아졌다. 그러나 방치된 건물들 중에는 도저히 사람이 사용할 수 없도록 벽이 삭고 지붕이 내려앉은 것들도 많았다. 단지의 입구는 총 4개로 2개의 주출입구와 2개의 부출입구가 있으며, 정문을 제외하고는 후문1~3으로 나뉘어 불렸다. 이 중 시외순환도로와 연결되는 도로로 나가는 쪽인 후문 3은 건물 몇 동을 전면철거 후 대규모 시설로 신축하기로 되어 있는 MICE 시설 공사로 사실상 통행불능의 상태다. 이 인근에 축조되어 있는 11동 동물실험동과 10동 곤충사육실, 12, 14, 15동 생물실험동 및 의약장비창고는 MICE 시설 건립을 위해 철거될 예정이다. 지하철쪽으로 가장 단거리에 위치한 후문1에는 경비초소와 현재 R, T, Z동으로 불리우는 18, 20, 28동이 있다. 경비초소는 팝업스토어 형태로 운영을 예정하고 있다. 후문 2쪽으로는 폐수처리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위치해있으며 유해시설로 철거해야 한다는 S시 공무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장 M과 몇몇 자문그룹의 고집에 따라 남겨져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러니까 1동과 정문 경비실 23동, 우체국 등이 위치한 21동과 18동, 20동, 28동 등을 제외하고 시장 Y의 새로운 구상이 알려지기 전까지 방치된 건물만 19개동에 달했다.
7~80년도에 특수목적으로 설치된 이 건물들은 당시에도 사람이 정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던 탓에 겉으로봐도 폐쇄적 형태로 생긴 공간이 많았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필요한 국장 M 등의 의지에 따라 건물 노후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간 수선만으로 사용가능한 11개의 동을 골라 리모델링을 한 후 알파벳을 붙여 재사용하고 나머지는 전면 철거를 통해 새로운 시설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1동은 A동으로 4동은 D동으로, 5동은 E동, 8동은 H동, 16동은 P동, 19동은 S동, 21동은 U동으로 22동은 V동으로 정문 경비실인 23동은 W동, 24동은 X동, 25동은 Y동으로 변경되었다. 28동은 Z동으로 변경하되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좋은 중고장난감가게로 그대로 사용하고, R과 T동으로 변경해 사용되는 18동, 20동은 기존 입주기관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여 과도적인 공존 상태로 남겨졌다.
센터는 단지 한가운데 위치하고 규모면에서도 가장 큰 건물인 A동 2층에 입주했다. 3층부터 6층까지는 센터가 모집해 입주한 62개 개별 기업과 단체들이 임대해 사용하는 오피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센터는 명목상 창의테크밸리의 안정적 관리운영과 타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선도적 산업단지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A동의 오피스 공간을 공실이 없도록 운영하고 당 동에 입주한 기업과 단체의 성장을 돕는 엑셀레이터 역할로 협소하게 운영되었다. 그건 M 국장이 센터장 K를 못 미더워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으며, 별 수 없게도 주요한 정보를 취득해 자원을 배치하는 그 모든 결정권한이 결국 M국장에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센터는 개소 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건물들을 온전히 보존하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흉물스러운 건물을 싹다 부수고 아파트를 지어달라는 사람도 있었으며 당연한 권리인양 건물 한 동의 운영권을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T동의 북파공작전우회 회원들은 센터 직원들을 무시로 찾아와 자신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G시와 근접한 산쪽을 손가락질 하며 저쪽 수뇌의 목을 따는 일 같은 것이라고 위협하며 이주 협상에 적극 나서라고 닥달했다. 이들은 받아주는 이 없어도 지치지 않았고 또 딱히 해결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쯤되면 모두들 의아해졌다. 전면적으로 철거해 일괄 개발하는 방식이 꼭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사람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을 보존할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맞는지,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사용하지 않고 보존만 하는 것은 또 맞는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일치된 합의점이 없다면 정치적 성과처럼 보여지는 것 말고 그저 현존하는 인류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잘 가꾸고 쓰는 것, 우리가 가장 원론적으로 합의된 가치로 왜 다시 회기하지 않는 것인지. 이곳의 사람들은 다같이 의아해지고 또 자주 무감해졌다.
그래서 이 단지의 사람들은 이곳의 터가 좋지 않다고 자주 되뇌였다. 나인도 가끔 그랬다. 센터 개소 행사에서 한 번, 그리고 그 해 연말 5일간 진행되는 행사 폐막식에서 또 한 번 그렇게 두번의 위령제가 치뤄졌음에도 그 감은 좀처럼 거둬지지 않았다.
커버사진: Unsplash의Ferdinand Stöhr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