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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자유로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외로움에 관한 책을 읽던 중에 사이에 존재할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혼자라는 것은 나에게 자유를 의미했고, 그 자유는 나를 어디든지 데리고 갔다. 설령 그곳이 진흙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 선택이므로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라는 자유로움은 포기하기 힘든 선택지였다. 내 것을 누군가에게 나눈다는 것은 참 힘들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나의 친절로 인해 서로에게 불필요한 피로감이 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행동들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내 것을 나누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음이 나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옅어지는 시간 속에서 함께 색을 잃어가면서 자연스레 서로에게 잊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말은 진리였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다. 그들과의 시간은 내 인생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었다. 애정을 갖고 공들였던 관계들은 이제 떠나가고 없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에서 허무함을 느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망설여졌다. 오래된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비쳐서는 안 된다고 오랫동안 느껴왔다. 마음속에 반복되어 새겨진 헤어짐의 기억은 점점 옅어졌지만, 남겨진 상처들을 보호하기 위한 나의 생존 방식이 타인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관계에 대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애쓰는 부분은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기대하며 결단 짓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관계 맺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대감이라는 건 애초에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감정 탓에 타인을 제대로 보지 않고 상대의 이미지를 왜곡하게 된다고 했다. 과거에 나는 꽤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타인에게 풍덩 뛰어들어 버렸다. 그리고 내 예측이 빗나갔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원망하곤 했다. 타인에 대한 나의 왜곡된 기대감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다가간다.
이런 생각에서 깨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3년 전부터 시작한 독서 모임 덕분이다. 외롭던 시절 그 속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다. 마음을 먹으면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동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 독서 모임 멤버 모집 글을 올렸다. 「독서모임을 운영해본 경험은 없으나 책을 좋아해서 이번 기회에 독서모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 제가 끌고 가는 독서 동아리가 아닌 모두가 함께 운영하는 독서 동아리를 만들고자 함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상보다 빨리 사람들이 모였고 모임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스쳐지나 갔고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쉬운 순간도 있지만 소중한 순간도 있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소중함은 소중함대로 그렇게 마음에 남겨 두었다. 그렇게 관계에 대한 무게감을 내려 놓는 연습을 했다. 독서 모임의 한 분은 “우리 모임은 성글어서 좋아요. 공기가 잘 통하는 느낌이에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빽빽하지 않은 우리 관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참 좋다. 우리는 언제든지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털어 놓을 수 있다. 누구도 그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입을 열 수 있다. 이런 안전한 공간이 일상을 살아가는 숨통을 틔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독서 모임을 통해 경험했다. 함께 이야기한 시간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만큼 거리를 둔다.
관계의 자유로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2024년을 되돌아보면서 생각해 보니 나의 관계 맺음에 새로운 변화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는 모임은 내가 안전하게 관계 맺는 장소 중 하나이다.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과의 모임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열려 있어서 다가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갖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양하게 오고 가는 이야기를 한 만큼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 그렇게 연결 지어진 가벼운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런 만남 속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은 다시 여러 관계가 이어지게 하는 역동을 만들어냈다. 존재가 가벼워지니 서로의 생각은 여기저기 흩어지다가 모이다가 자기 생각을 만들어 간다. 어쩌면 이제껏 타인과의 관계를 무겁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무방비의 상태로 타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만남처럼 헤어짐에도 가벼워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