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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사랑인 줄 알았어

#사랑의모양 #다비드칼리 #모니카바렌고 #오후의소묘

by 수키
‘온전한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원하는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


동네 책방에 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림책과 관련된 어른들의 수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새로 나온 그림책 톺아보기>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이 수업은 최근에 나온 신간 가운데 그 작가의 전작을 펼쳐 놓고 읽은 다음 그림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다. 출간한 그림책이 적은 경우에는 그림책을 감상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을 읽던 날은 한 권 한 권 여유롭게 볼 시간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책방에서 진행했던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다시 한번 《사랑의 모양》을 읽고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이야기했다.


나에게 사랑은 ‘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다. 아이는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 나도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랑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랑은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고 순간의 감정에 따라 표현하는 말과 행동들은 모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사랑은 달랐다. 아이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나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아이의 사랑이야말로 온전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생겼다.

아이의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늘 한결같지만, 나의 사랑은 그러지 못했다. 그날그날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그럴 때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나에게 친절하고, 항상 웃어주고, 늘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언제나 응원해 주었다(아이는 타고난 사랑꾼 같다). 아이가 표현하는 모든 행동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를 향해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아이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의 사랑을 받을 때면 무장해제 되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아이와 나의 사랑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완전히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립이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날 난처하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이를 이해하기보다는 틀린 행동을 지적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아이가 밥을 먹는 방식, 샤워하는 순서, 옷을 고를 때, 친구와 사귈 때 해야 하는 행동까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른인 나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을 바꾸게 한 일이 생겼다. 거실에 앉아 놀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콘센트가 있는 벽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가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아이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아이가 손을 뻗은 곳은 콘센트가 아닌 그 옆의 벽이었다. 벽지에 작은 얼룩이 묻어 있었는데 그것을 작은 손가락으로 긁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그동안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 해졌던 나의 통제는 그저 아이를 내 방식에 맞춰 길들이고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품게 했다.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늘 의심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올바른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뭐든지 대신 결정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갈 때까지 엄마가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말로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그러지 못했다. 아이에게 받는 사랑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아이처럼 사랑하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만큼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나의 기준에 맞춰진 사랑을 일방적으로 원했다. 이 그림책에서 꽃을 잃고 실의에 빠진 여자에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이 널 기쁘게 한다면 그건 네가 무엇을 주어서도, 무엇을 돌려받아서도 아니야. 단지 지금,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여자는 꽃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 사랑으로 꽃을 영원히 곁에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정원이 아닌 이웃집에 피어난 꽃을 보고 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변한다. 어렸을 때 아이는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이제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변해도 서운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사랑은 그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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