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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뭘 봤니? - 없음이요
‘없음’는 무엇일까.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까.
하지만 이미 ‘없음’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엄마, 우주의 끝은 없어?”
“없지. 우주는 무한이니까.”
“무한은 없다는 거야? 우주는 정말 끝이 없을까?”
종종 우주의 끝을 묻는 아이는 나와의 반복되는 이 질문과 대답에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아무도 알 수 없어서, 알 방법이 없어서 무한이 되어버린 우주의 끝.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 ‘없음’은 없는 게 아니다.
그림책 《아무것도 없는 박물관》에서 우나와 오토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아무것도 없는 박물관’에 간다. 여러 방에는 ‘없음’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은 것, 알고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나온 아이들은 다시 뒤를 돌아보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나설 때는 색이 있는 옷이었지만 돌아올 땐 옷의 색이 사라지고 없다. ‘없음’을 보고 온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비어 있는 쇼핑백에는 어떤 ‘있음’이 채워져 있을지 궁금했다. 박물관에 다녀온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잘 다녀왔어? 박물관에서 뭘 봤니?” 아이들은 말한다. “없음이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껴졌기에 관심을 꺼 두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언가를 놓치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그것은 사소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점점 그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자 그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세상은 공기, 생각, 자아, 관계, 사랑, 평화, 행복, 슬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은 일부분인데 그 일부분에 정신이 팔려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멀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아무것도 없는 날이다. 아무것도 없는 날은 ‘약속’이 없는 날을 의미한다. 이런 날은 아침에 일언라 때부터 몸과 마음이 가볍다. 아이의 등교를 챙기는 것 이외에 내가 시간을 맞춰서 무언가를 해야 할 일은 없다.
8시 30분
원래대로라면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이지만, 가끔 늦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소파에 앉아서 멍을 때리다가 내 방으로 들어간다. 책 냄새가 나는 곳. 노트북이 있고 책들이 한껏 흐트러져 있는 곳. 책상 위를 아무것도 없게 정리도 해 보았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결국 같은 꼴로 돌아온다. 노트북을 열고, 어제 한 일들을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 이어서 일을 시작한다. 약속이 없는 날 나의 시간에 대부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날만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이 날이 좋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몰입해서 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기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면 된다.
아무것도 없을 때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있음’의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없음’을 찾으려는 용기가 아닐까. 목표가 보이지 않을 때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아이에게도 열심히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을 아직 10년도 살지 않은 아이가 이해할리 없다. 그래도 그런 게 있다고,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걸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