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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쓰는 사람 22화

독립을 위하여

#헤클라와라키 #마린슈나이더 #이마주

by 수키
라키 없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뉴스를 보던 아이가 문득 나에게 “엄마도 늙으면 요양원 갈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야지.”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서운하다는 듯이 “내가 집을 지을 건데?”라고 말하며, 엄마가 원하는 집을 만들어줄 테니 늙어서도 함께 살자고 했다. 아이의 그 말에서 나는 ‘이 아이는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림책에서 헤클라는 라키에게 끊임없이 호수에 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키는 헤클라의 말을 잊고 호수에 몸을 담근다. 그렇게 라키의 독립이 시작된다.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너는 참 어려운 자식이야.”라고 말했다. 무엇을 하든 군말 없이 하는 모습에서 그냥 내버려 두어도 믿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모님의 믿음이 싫었다. 나는 할 줄 알았던 것이 아니라 나라도 혼자 해야 했기에 떠밀려서 했을 뿐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간 언니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여러 번 가출을 했고 술과 담배에도 손을 댔다. 여러 번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기에 부모님은 늘 노심초사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차마 나도 좀 돌봐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애써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척 자랐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적이 있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던 그때는 가족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족이 보고 싶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애써 덤덤한 척 전화를 걸어 아이를 출산했다고 말하고, 옆에 없어줘서 미안하다던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늘 혼자 모든 걸 해왔기 때문에 그 감정도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적이지 않은 아이가 어쩌다 보니 독립적으로 자라야 했다. 계속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가지는 동안 나는 그 운명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일찍부터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자고 다짐한 것은 어쩌면 돌봄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8개월이 됐을 때 큰 고민 없이 0살 반이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열 살이 된 아이는 그렇게 어린아이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냐며 서운해하지만 독박육아에 새벽에 일을 해야 했던 나에게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주변에는 나를 돌봐 줄 누군가가 없었고,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몰랐다. 어릴 적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가 엄마가 집에 있는데 자기도 같이 집에 있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어. 우리 할 일을 끝내고 다시 만나자.”라고 말했다. 아이의 독립의 속도는 나의 예상을 늘 빗나갔다. 느린 것 같으면서도 빨랐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잠자리 독립에 들어간 아이는 새벽에 깨면 어김없이 남편과 나의 옆자리로 파고들었고, 자신이 잠들기 전까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서 큰 사랑을 받는 것처럼 행복해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립에 대한 나의 조바심이 아이를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충분히 돌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결핍을 품은 채 어른이 되었다. 이러 내가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자란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약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혼자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은 늘 흔들린다.


아이의 피아노 학원 앞에서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늘 혼자서도 잘 하지만 친구와 같은 시간대에 배우다가 이제는 그 친구와 시간대가 달라서 아이가 재미없어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에게 친구가 없어서 재미없냐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하교하는 그 길을 심심해하는 아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 선뜻 함께 가자고 말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자신의 섬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헤클라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서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역할이 무엇일지 늘 고민한다. 역경의 시간을 지나 산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헤클라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독립. 그것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해당하는 목표다. 나는 나로서, 아이는 아이로서 독립하기를 바란다. 잘 독립하기 위한 방법은 모른다. 최종 목표를 향해 주어진 날들을 살아갈 뿐이다. 실패도 하고, 후회도 하겠지만 그런 경험들이 저 너머의 세계를 갈망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목마른 자가 스스로 우물을 팔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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