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꼬리 #기아리사리 #비올레타로피즈 #오후의소묘
내 배움의 대한 욕심은 아이에게까지 투영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것에 있어서는 기회가 되는대로 경험하게 하고 싶다. 군소리 없이 배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엄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저 예쁨 받고 싶은 마음에 말을 잘 듣는 거라고 부정적이었다. 그리고는 할 놈은 자기가 알아서 다 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세상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들이 육아에 대해 물으면 아이를 꼭 키워보라고 말하면서 육아를 하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180도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나에게 육아라는 것은 그랬다. 세상 일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고, 그 과정에서 ‘나’로 살아남기 위해 아이의 시간 속에서 살아감과 동시에 내 삶의 시간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했던 시기였다. 아이에게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했고, 살기 위해 찾아서 배우기 시작했다. 파마를 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한 만큼 소심한 나에게 배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궁금하고, 알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을 때 기회의 순간이 오면 앙 물고 놓지 않았다. 나에게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것을 넘어서 내 앞에 놓여 있는 불편한 삶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공유학교에서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첫 수업을 듣고, 너무 어려워서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남편에게 말하자 아이가 힘들어하는데 꼭 배워야 하는 거냐며 그만두라고 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아이가 배워왔던 수업 방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경험해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한 번만 더 수업을 들어보자고 아이를 달랬다. 두 번째 수업일에 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내고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다양한 연령의 학생이 듣는 수업이기에 아주 쉽게 가르칠 수는 없지만 겁내지 않으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했다. 수업을 마친 후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묻자 아이는 재미있다며 마지막까지 참여하겠다고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말했다. 세 번째 수업 날 아이는 얼른 코딩을 완성하고 싶다며 쉬지 않고 두 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서 집중했다. 기뻤다. 아이가 수업을 마지막까지 참여한 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닌, 모르는 것을 기꺼이 배울 줄 아는 경험을 받아들인 것 같아 그 모습이 기특해서 기뻤다.
지난 주말, 정독 도서관으로 장애인권운동가인 김형수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어려서부터 뇌성마비로 장애인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장애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강연 도중 그가 말했다. “제가 왜 이렇게 힘들게 목발을 짚고 강연을 하는 줄 아세요? 여러분, 불편하시라고요. 이런 강연 불편한 거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겪어봐야 장애인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으로 살면서 불편함을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애인권운동가가 되었다. 비장애인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 삶이 부럽지 않다고 유쾌하게 말하는 그의 당당한 태도에서 얼마나 그가 열심히 자신의 삶에서 만난 벽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한 진실들을 계속해서 마주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꼭 배워야 할 삶의 태도이다. 나는 이것을 몰랐다. 여전히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내 손에 주어지는 대로, 내 눈앞에 있는 대로, 누군가가 하라는 대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행복이라고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추해 본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칠 때면 ‘아, 이건 내 운명이 아닌가 봐.’하고 나아가던 방향에서 유턴하곤 했는데 나는 왜 그 벽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이렇게 한 번 더 용기 낼 수 있는 이유는 불편함을 외면한 날들에 대한 뉘우침이다.
그런 마음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럴 때면 남편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힘들면 하지 마.”라고 말한다. 힘들어도 하는 게 정말 재밌는 거지. 남편은 그 맛을 모른다. 그림책 《노래하는 꼬리》 속의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이에게 생긴 꼬리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스스로 만든 한계에서 벗어나 꼬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것처럼, 힘든 것도, 불편한 것도 계속해봐야 한다. 그래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다. 불편한 것을 해내는 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경험하게 하고 싶다. 자신이 하고 싶은 본능대로 사는 삶이 아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탐험가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