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나만 #사라룬드베리 #봄볕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이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원에 데려다준다. 아이는 나와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같은 학원의 친구를 발견하면 잡고 손을 풀고 그 친구에게로 달려간다. 떠나간 건 손인데 마음이 허전하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이에게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책 《오로지 나만》에서 아이는 말한다.
“엄마는 부두이고, 나는 배예요.”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부두이고 싶지 않은데, 나도 탐험을 떠나고 싶은데⋯’
우리는 각각 배이면서 부두일 수는 없는 걸까.
가족들을 만날 때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인지 애틋하면서도 서먹한 애매한 감정들을 느낀다. 형제들은 부모님과 마찰이 있을 때면 멀리 떨어져 사는 나를 부러워하지만, 언제든지 부모님을 볼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럽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나서 1년을 더 본가에서 지내다가 홀로 상경했다. 그렇게 갑자기 나의 독립이 시작되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갑자기 부두에서 떠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애초에 나의 매듭은 묶어 둘 부두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깨닫는다. 어릴 적 가족들과의 생각나는 추억은 몇 가지 사건들만 단편적으로 남아있을 뿐, 나의 말과 감정을 나눈 기억은 없다. 언제나 내 일에 관해서는 아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무한한 허용의 세계에서 나는 의지할 곳이 없어서 위태로웠다. 마치 물 위에 둥둥 떠있는 나뭇잎처럼.
남편과는 직장 동료로 만났다. 겉모습만 봐도 서로 너무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끔 사내 카페에서 만날 때면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함께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던 날 송별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가볍게 주고받던 대화가 깊어지고, 서로에 대한 호감도 무르익었다. 남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적정거리에서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다. 서점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둘러볼 때도 한참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과 해야겠구나. 나에게 남편은 부두였다. 그랬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내가 부두가 되어야 했다. 회사 간 남편을, 유치원에 간 아이를 기다리면서 나는 외로웠다.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을 때 남편에게 한 명만 낳겠다고 선포했다. 힘들게 아이를 낳은 날 의사는 나에게 더 이상 출산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아이를 만났을 때 언젠가는 홀로 남겨질 날을 생각하며 완전히 독립된 어른으로 키우자고 다짐했다. 내 품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고 그렇게 점점 그 경계를 넓히고 있다. 어느 날 아이는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앎’과 ‘모름’ 혹은 ‘알 수 없음’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나는 얼마큼 알아야 하고 얼마큼 몰라야 할까. 아이가 허락하지 않은 경계에 들어가려는 순간 감시자 취급을 받기 때문에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기다림 속에서 여전히 부두가 될 자신은 없어서, ‘오로지 나만’의 세계를 꿈꾸게 된다. 자기 전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재밌었어?”
“응. 재밌었지.”
“뭐 했는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이가 나에게 탐험을 허락한 시간은 자신이 학교에 가 있는 대여섯 시간뿐이기에, 나는 그 시간에 최대한 멀리 떠날 수 있는 자기 안의 세계로 탐험을 떠난다. (최승자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가장 먼 외국은 마음속에 있다고.) 아이의 배가 도착할 때면 나도 부두로 돌아와 아이를 맞이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나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어디야?”
“집이지.”
“뭐 하고 있었어?”
“책 읽고 있지.”
늘 같은 패턴의 대화이지만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가쁜 숨소리에서 사랑이 나에게 뛰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부두에 도착한 아이는 나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마음으로 말한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릴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각자 여행을 떠났다가 보고 싶어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을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