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반했을때 #비스와바쉼보르스카 #베아트리체가스카퀘이라차 #나무의말
사건의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나는 언제 사랑에 빠질까? 이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나는 언제든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나는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내가 ‘사람’과 사랑에 빠졌을 때
대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 과에는 여자가 많았다. 그중에 여자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러워서 자리를 피하고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으며 음악을 즐겨 듣던 남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잔디밭에 앉아 있는 그 친구를 보았고, 혼자 있는 그 남학생을 잘 챙겨주던 언니와 함께 인사를 하려고 다가갔다.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 친구는 자신이 듣고 있던 ‘메탈리카’라는 록 밴드의 음악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귀 기울였다. 우리는 메탈리카 외에도 다른 록 밴드의 음악을 같이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렇게 기타를 치던 사람과, 사진을 찍던 사람과, 그림을 그리던 사람과, 홍대 거리를 좋아하던 사람과, 일본어를 잘하던 사람과, 책을 만들던 사람과, 독립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내가 ‘책’과 사랑에 빠졌을 때
어릴 적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그 친구의 집은 2층으로 된 단독 주택이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본 거실의 크기는 우리 집 전체의 크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넓었다. 그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책장과 그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위인전 시리즈였다. 나는 그 책을 한 권씩 집으로 빌려와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독서 감상 동아리에서, 일본에서는 도서관과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책과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책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나를 위한 방이 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 나는 주로 이 공간에 시간을 보낸다. 전국 공공도서관 중 여섯 번째로 크다고 규모를 자랑하는 집 근처의 도서관보다 집에 있는 나의 작은 방을 더 좋아한다. 방에 있는 책장을 바라볼 때면 자연스레 어릴 적 친구의 집에서 보았던 커다란 책장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날이 내가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된 첫 번째 우연이 시작된 곳이 아닐까.
내가 ‘아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아이가 태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는 내 배에서 꺼내어졌다. 30주가 넘어가면서부터 고위험산모였던 나는 행동에 늘 조심해야 했고, 37주가 되기 한 달 전부터는 꼼짝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나는 임신한 내 몸을 보고 싶지 않았다. 초음파검사를 받을 때 보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37주 0일이 되던 날, 9시 9분에 아이는 내 배에서 꺼내어졌다. 하지만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 아이는 인큐베이터로 바로 옮겨졌고, 그렇게 아이만 병원에 둔 채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내 배는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무거웠다. 사람들은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축하해 주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롭고 슬펐다. 출산일에 맞춰서 완성하려고 시작했던 프랑스 자수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몇 주가 지나고 아이가 퇴원했다. 웃지도 않고 미동도 없는 아이 옆에 가만히 누워 바라만 보았다. 20시간을 자고 4시간을 깨어 있는 아이를 보면서 꿈틀거리는 눈이, 오물거리는 입술이, 동그랗고 부드러운 어깨가 그냥 좋았다. 나의 눈을 마주 보고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이 아이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와 사랑에 빠졌을 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하고 싶은 것에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난 인연들이 있다. 잠깐의 인연이기에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그런데 또 만나게 된다. 당연히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넸을 때 마주 본 눈빛에서 반가움을 느꼈다. 나를 알아봤다. 나를 알아봤다고? 어떻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신기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신기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배우는 것을 좋아할까. 나는 왜 책 모임을 좋아할까. 나는 왜 그림책을 좋아할까. 나는 왜 좋아하는 걸 숨기지 못할까. 나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질수록 더 그 이유들이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점점 나와 사랑에 빠지고 있다.
우연이 운명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상대가 궁금해질 때 나의 호기심은 사랑으로 변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났고, 그렇게 모든 것에 빠져 들었다. 내가 만약 그 우연들의 신호도 징조도 읽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짧은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고,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내 곁은 머물러 있던 우연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순간들이다. 어쩌면 인생은 계속해서 작은 우연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기에 우연과 운명의 경계 사이에서 더 이상 고민은 그만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무엇을 우연으로 두고, 무엇을 운명으로 만들지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는 것이 내 다짐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