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진짜진짜사람입니다 #엑스팡 #위즈덤하우스
그렇다고 한다면, 그래요.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다니던 독서 교실을 그만두었지만 책 읽는 습관을 제대로 잡아주고 싶었던 나는 아이에게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심심해도 독서 시간이 되기 전에는 책을 잡지 않는 아이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너는 책이 싫어?”
“좋아하는데?”
“그래?”
“응!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모르는 거야.”
“아……”
나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거 1. 만화책을 제외하고 스스로 책을 펼치지 않는다.
근거 2. 책방에서 책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근거 3. 도서관을 싫어한다.
근거 4. 정해진 시간만 읽는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나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라고 인정해 줬다. 나 역시 어릴 때 뻔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과 굿즈를 사기 위해 문제집을 산다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급식비를, 수학여행 경비를, 교재비를 속였다. 그때 부모님은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을까? 가족이 함께 모일 때면 공범이 되어 주었던 언니와 그날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부모님은 아무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다.
나의 경우에 아이의 거짓말을 속아주는 이유는 그 거짓말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 진실이 그대로 보여서이다. 아이는 거짓말을 할 때 눈을 위로 굴리고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는 나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보면서 말한다. 아이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이미 거짓말인지 눈치챘지만 진실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굳이 사실관계를 따져 묻지 않는다. 나는 그냥 믿는 척한다. 가끔은 거짓이 차마 말로 전할 수 없는 진실을 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부모님이 나의 거짓말을 눈감아 준 이유도, 그림책 속의 리 아저씨와 마을 사람들이 외계인의 거짓말을 모른 척한 것도 모두 이런 마음이었기 때문일까.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 그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나서, 말 못 할 그 사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조용히 공감해 주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해 본다.
아이가 진짜-진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 어떤 방법으로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조용히 관찰해 보았다.
관찰 1. 아이는 잠들기 전에 함께 그림책을 보는 것을 즐긴다.
관찰 2.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같이 읽으려고 한다.
관찰 3. 책을 읽고 나면 재미있다며 별 다섯 개의 평점을 준다.
관찰 4. 책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관찰 5. 아빠에게 책을 읽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한다.
관찰 결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이지만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방법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야 아이와 함께 오래오래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유에는 책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호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기꺼이 기다리고 바라보면서 믿는 척을 하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