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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게 맞다

어느 노부부의 돌봄을 지켜보며

by 빛날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병원 입구, 대기실 의자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일어서시며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내가 밀고 있던 휠체어 손잡이를 받아주신다. 휠체어에는 짧은 커트의 하얀 머리카락, 마른 체형의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얼굴은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안녕히 가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할머님이 휠체어를 타며 했던 인사를 또 하신다.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닌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병원 실습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지금 병원에서 실습생으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여태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이라 신선함도 가득하다. 모르는 게 천지라 배워야 할 게 많으니 긴장도 되지만 낯선 직업의 세계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재미있다. 내가 배치받은 곳은 신장투석실이다. 실습생이 나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어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학생의 신분이니 중요하거나 어려운 일은 하지 않지만 혹여나 작은 실수라도 해서 민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병원 실습 첫 주는 누가 봐도 우리는 실습생이었다. 긴장감이 온몸 구석구석에 박혀있었다.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앉아있는데 허리는 곧게 펴고 , 시선은 정면, 주먹 쥔 손은 무릎에 힘을 준 채 교과서에 '바른 자세'라고 동그라미 되어 있는 그림 그대로의 모습이다.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두 명의 학생이 미어캣처럼 움직인다.

'한 말씀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뭐 그런 의지의 동작들이 무의식 중에 나왔다.


3주를 지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 익숙해지니 긴장이 풀리고 사람과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투석하시는 환자분들의 얼굴, 특징이 보였다. 몸이 아프고 불편해서 오시는 분들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건강하게 보이는 분들도 있고 병약함이 많이 드러난 분들도 있다.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시다. 인상적인 환자 분이 몇 분 있는데 특히 마음이 가는 분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작고 고운 할머니가 계신다. 같은 요일, 시간에 오시는 데 참 고우시다. 까만 피부에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주름. 짧은 커트의 소복한 하얀 머리카락. 말씀하실 때 부드러운 소녀감성 느껴지는 인자한 목소리. 소녀 감성이 느껴지는데 인자한 목소리라......... 뭔가 궁합이 안 맞는 말 같지만. 소녀감성도 묻어나는데 인자함도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목소리와 표정에 느낌이 전해져 그런 걸로...


휠체어에서 침대에 올려드리면 늘 그렇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이불을 덮어드려도. 옷을 입혀드리고 물건을 가까운 곳에 갖다 드려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자그마한 몸에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데 크게 찡그린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주름이 많으시지만 미소 가득 주름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곱게 보인다. 이 소녀다움 가득한 할머니가 사랑스럽게 보이는 데 이유가 있었다. 물론 살아오신 성품이 그러하셨겠지만 할머니 옆에 늘 함께하시는 분이 계셨다. 투석이 끝나면 보호자 대기실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한결같이 웃으며 할머니를 기다리는 키 큰 할아버지. 할머니 머리를 예쁘고 단정하게 커트도 직접 해 주시고 늘 할머니를 기다려 주시는 분. 할아버지도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하는데 할머니와 함께면 행복하신가 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분들에게 비껴가는 이야기인 듯하다.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옆에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부럽습니다."등등의 말을 사람들이 건넨다. 할아버지가 대단한 정성임엔 틀림없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참 잘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볼 때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할머니의 표정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다. 내가 봐도 사랑스러운 소녀인데 할아버지는 당연하시겠지. 몸은 불편하지만 언어의 표현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우신 분이다. 이 노부부를 보면서 떠오르는 노랫말이 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수 안치환이 부른 이 노래를 들었는데 별 느낌도 감흥도 없었다. 그냥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만든 '가사'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노랫말이 완전 공감이 간다. 요즘 밖에 나가보면 공원이나 산, 길가에 예쁜 형형색색의 꽃들이 예쁘고 풍성하게 피어나 있다. 아름답다. 물론 보기도 좋다.

그럼, 사람이 피워내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피워내는 아름다움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향을 넘어 따뜻함과 사랑이 한 스푼 더해져 사람의 마음에 꽃을 피우게 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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