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한 그루쯤 꼭 심고 싶은 나무가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 내내 꽃을 피우다가 가을이 되면 어느새 꽃이 다 져버려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게 만든다.
배롱나무. 2021.8.7. 동네에서
배롱나무를 자세히 보면 꽃과 함께 작고 귀여운 꽃봉오리들이 가지에 참 많이도 달려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백일 동안(7월부터 9월까지)이나 계속 꽃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꽃봉오리가 많은 배롱나무 줄기. 2018.8.10. 동네에서 촬영 (이 사진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무 이름도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핀다고 하여 '백일홍 나무'라고 불리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한 지는 알 수 없다. (배롱나무는 주로 분홍, 주홍빛 꽃을 피우고 흰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도 있는데 '흰배롱나무'라고 부른다.)
배롱나무 꽃은 구조가 특이하다. 대부분 꽃들은 봉오리가 벌어지면서 꽃이 피어나는데, 배롱나무 꽃은 봉오리 옆으로 6개의 틈이 벌어지면서 그 틈새로 각각 1개씩, 6개의 꽃잎들이 나온다. 그리고 아주 가느다란 수술들이 위쪽으로 꼬불꼬불 나온다.
배롱나무 꽃봉오리에서 꽃잎과 수술이 나오는 모습. 2018.8.8. 촬영
이런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림에 담고 싶었는데 찍어놓은 사진을 고르던 중에 적당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꽃봉오리 옆으로 꽃잎들이 나오는 모습과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져서 수술과 암술이 모두 보이는 모습, 그리고 이파리들과 줄기까지 내가 원하는 요소들이 모두 있는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 없었으면 사진을 찍으러 동네를 배회하며 다녔을 텐데.. 과거에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들이 나에겐 보물과 같다.
너무 단순한 구성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종이에 옮겨보니 생각보다 예뻤다.
배롱나무 스케치. 2021.8.26. 모조지에 연필
배롱나무 꽃이 다 지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제발 배롱나무 꽃이 늦게 지기를 바라면서..
수채화 전용지에 스케치를 전사하고 대강의 밑색 작업을 한 후에 꽃잎부터 하나씩 색을 입혀나갔다.
배롱나무 채색 중. 2021.8.29.
다행히도 9월의 중순인 지금, 아직 배롱나무 꽃은 다 지지 않았고 드디어 그림을 완성했다. 오늘 오후에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으러 가야 해서 그전에 완성하려고 마음먹고 서두른 덕분이기도 하다. 주사 잘 맞고 오겠습니다!! 배롱나무 꽃과도 안녕~ 여름과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