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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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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현 Jan 21. 2022

쉬어가기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만 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나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나만의 성벽을 단단하게 쌓아야만 한다. 그리고 단단하게 쌓은 내 성벽 안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 따뜻한 모닥불을 피우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아주 잠시 쉬어가야 한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지극히 혼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주변인들과 만남은 무기한으로 잠시 미뤄둔다. 연락 또한 자제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내 행동에 생각들에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상하다 취급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 내 곁에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 그 사람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행동이기에 주기적으로 꾸준히 한 번씩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온엔 오프'와도 비슷한 개념이랄까나.

보통은 '잠수'라고 표현 하지만, 나는 '쉬어가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 같은 소통의 과부하 시대에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 나를 잃지 잊지 않기 위해서 ,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쉬어가기' 기간은 정해두지 않는다. 길게는 몇 주가 될 수도 있고, 짧게는 몇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쉬어가기'는 어떻게 진행이 될까?


우선, 주변인들에게 잠시 쉬어갈 것을 보고하는 것이 좋다. 내 주변 사람들이라 해도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나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내 변화에 서운할 일이 있을 수 있으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최대한의 양해를 구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쉬어가기가 처음이라면 양해를 구할 때에도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염두에 두자. 그리고 '사람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내 맘과 같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런 내 행동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가정하에 설명을 충분히 하는 편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


다음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는 달달한 커피와 최애 디저트 정도) 준비하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지금처럼 끄적끄적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가장 나로 솔직할 수 있을 때가 글 쓸 때이니까.



'쉬어가기'는 어떤 글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분명 '쉬어가기' 기간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있을 테니까, 그걸 찾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겠지만 뭐든 좋다. 쓰고 싶은 내 마음 전부를 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지금까지의 나의 자서전' 같은 거!


행복하고 기뻤던 좋았던 이야기만 쓸 수도 있고, 반대로 힘들었던 아팠던 이야기만 써보기도 하고, 이랬다가 저랬다 하는 , 쓰고 싶은 모든 걸 솔직하게 써보는 거다.



오늘 나의 선택은 내가 겪은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여기서 중요한 건 '뭐가 더 컸고 뭐가 더 작았다' 비교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고난과 역경'이 내게 있었느냐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절대 부족한 것이 아닌) 부유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지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살아오신 부모님,


7살, 12살 두 차례 겪은 교통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인해 심각하게 나빠진 내 건강상태 (두통 구토 증상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증상이 뇌종양 같다며 MRI까지 찍었지만 결과는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 아직까지도 종종 편두통이 심할 때면 구토와 함께 하루는 꼬박 아프곤 한다, 자궁이 휘어 매달 생리통이 극심해 응급실에 실려갔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필 날짜가 겹쳐 한 번도 수련회에 제대로 참여해본 적이 없다 등),


초, 중, 고, 대학교 시절까지 매번 무리 지어 다니는 아이들과 내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할 뻔했던 것 (당했다고 하기엔 혼자 너무 잘 다녔고, 어려서부터 제일 친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주의였기 때문에 그 무리에서 빠진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으니까? 상처는 아니지만 인생에서 겪은 고난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장학금 받으면서 최하 A-로 학점 4.25로 졸업하고 빈 공강 없이 청강까지 들어가며 그렇게 미칠 듯이 좋아했던 패션 공부, 하던 일도 그만두고 (사실 형편에 패션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과분했었기에 졸업한 것만으로 첫 번째 꿈 이룬 거라 생각했기에 속상하진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편찮으신 부모님을 이어 뽀빠이화원을 운영하게 된 것,


시골 같았던 이 동네 서촌을 그리고 뽀빠이화원을 미니쏭으로 내 꽃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린 일,


그 과정 속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월세 문제, 다양한 손님들, 악화된 내 건강상태 등등)


고민 끝에 집으로 옮기게 된 뽀빠이화원, 꼬옥꼬옥 숨어버린 비밀의 화원 같은 지금의 뽀빠이화원,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


급격히 악화된 건강상태로 인해 인생 처음 부려본 욕심, 아이..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었지만 버티기 힘들 만큼 어려움이 많았던 임신기간, 출산 후 겪은 심각한 우울증, 다시 한번 믿어보자 기대했던 결혼식(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결과의 이혼.. 그리고 현재의 오롯이 나 홀로 육아까지.. 절대 쉽지 않은 어려움의 연속,



10년 넘게 앓아 온 자궁선근증, (자연임신이 어렵지만 출산 후 나아진다는 말도 있었기에) 출산 후에도 경과가 좋지 않았고 이혼 후 점점 심해진 증상들에 무너질 뻔한 내 인생, 하지만 두 번째 기적과도 같은 (적출 수술 아니고) 절제 수술 (아직도 꿈만 같다.. 호르몬 영향으로 매일 두통에 시달렸고, 매일 복통에 시야까지 흐려지는 증상들로 사실 두려움이 점점 커졌었는데.. 수술 후 그런 증상들이 사라져서 여전히 신기하고 울컥할 만큼 감사하다)


양육비 없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몫 또는 부담, 온 힘 다해 지켜내 온 내 소신과 내 일을.. 처참하게 짓밟는 현실, 오르는 꽃 값, 늘어나는 꽃 집, 임신 출산 육아로 잠시 단절되었던 내 경력 경험의 부족함에서 오는 자신감 상실, 빠르게 변하는 유행과 세대차이 등등





'이렇게나 나를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았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텼구나, 잘 이겨내 왔구나.' 하고 나 스스로를 토닥여본다. 이게 바로 나의 '쉬어가기'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나 자신만큼 나에 대해 알아주기 어렵다.



어떤 일들에는 "에잇, 나도 하기 싫어! 내가 왜 해? 그만두고 싶다." 라며 부정도 해보았고, 도망치고 싶어 피하기도 해 봤고, 애원하듯 원망도 해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내 인생은 그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모든 걸 선택하고 해내야 한다는 것.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했을 때에 오는 뿌듯함 만족감이 진정한 내 것이고, 기쁨 행복 또한 내가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로부터 당연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대로 고난, 상처, 아픔, 어려움, 힘든 모든 것 또한 내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받아들인다 해서 이것들을 반드시 받아내야 하는 뜻이 아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 내게 준 상처를 상처로 인정은 하되 내가 받아낼 건지 아니면 해소하여 받아칠 건지 선택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통해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배우면 된다.



우리 엄마가 내게 항상 하던 말이 있다.

상처받고 아파할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참 냉정하다 싶었는데 지나고 나서 나 스스로 깨닫고 생각해보니 인생 명언이었더라.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 않느냐, 그런 사람이 준 말들에 상처받지 않으면 된다. 네가 너를 믿고서 , 사실로 네가 그렇지 아니하면 된 거다. 상처를 준다 해서 내가 받지 않으면 그만인 것."



물론 믿고 있는 내가 다 옳지 않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쉬어가기'를 통해서 , 내가 온전하게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통해서 나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만 한다.


칭찬할 부분은 격하게 칭찬을 해주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따끔하게 지적도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은 지켜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그림자가 되지 않도록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인지하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따뜻해진 몸을 일으켜 모닥불을 끄고 주변 정리를 하고 성벽의 문을 자물쇠를 걸어 잘 닫고 나오면 오늘의 '쉬어가기'는 끝!






+


지난 내 '고난과 역경'들로 가장 많이 잃은 것이 '사람'이라면 가장 크게 얻은 것도 '사람'이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스치면서 모두가 다 내 맘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상대를 '감정 쓰레기통'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힘든 것들이 그 사람에겐 듣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져서 그렇게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반대를 경험한 적이 있으니 그 사람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지금 내 감정이 이러하니 이걸 고스란히 너도 느껴라!'가 아닌 '지금 내 감정 내 상태가 이러하니 잠시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다.'의 뜻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친하다고 가깝다고 해서 내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어렸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 미숙했고 , '쉬어가기'의 과정 속에서 우선시되었던 설명이 부족했기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으로써의 나는 그때 참 많이 버거웠을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미안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저 온 맘 다해 진심 다해 응원할 뿐이다. 잘 지내주기를, 부디 행복하기를..!


나도


그리고

나를 스친 모든 사람,

여전히 아끼는 나의 그대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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