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첫 장이 된 종이
다소 무겁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종이 위의 탄생]이라니.
영화 제목도 아니고,
다큐멘터리 제목도 아닌
재미라고는 없는 이 말.
대체 무슨 뜻일까?
종이에 관한 공예기법을 연구하며,
우리 전통종이 한지와,
그와 함께 주축을 이루는 서양 종이,
크라프트지의 물성에 매료되었다.
투박하고 까슬한 누런
크라프트지만의 독특한 향기가
낡은 나무책장이 품고 있는
오래된 책 냄새로 다가와서일까?
아니면 어릴 적
어머니가 찬장 속에 숨겨두었던
설탕봉투의 추억 때문일까.
여전히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다.
1995년.
난생처음 크라프트지로 만들어진
노끈을 알게 되었다.
마침 새 작품 구상으로
소재에 목이 말라있던 나는
고민할 시간도 없이
크라프트지 노끈 한 콘을 구입했다.
그날부터
종이끈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45인치(120cm 폭) 캐나다산 베틀,
마루직기(weaving loom)에,
날실로 걸리고 씨실로 감겨,
크라프트지로 짠
종이 직물로 탄생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크라프트지 노끈의
차고 넘치는 매력에 푹 빠졌다.
면사나 마사처럼 대부분의 실은
끝과 끝을 연결할 때
매듭이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종이끈은 마법처럼
이음새 흔적이 감쪽같았다.
이 존재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요즘처럼 편리한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임신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피치 못할 사정이 되어
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육아를 동반한
'어쩌다 회사 운영'은
드라마틱하게 작품활동을 중단시켰고 2011년에서야 다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2011년부터 개인 작업과
기관 수업을 병행하던
5년이란 시간 동안의 기록은
차차 이어나가기로 하고
오늘은 이 이야기의 주제인
[종이 위의 탄생]에 대한
비밀에 대해서만 쓴다.
2016년.
기관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가 강의하고 있는 수업의 재료인
크라프트지에 대한 역사와 정보에 부끄럽게도 무지한 강사임을 깨달았다.
그 사연에 대한 비밀스러운 흑역사는
다른 회차에 하나씩 고백하기로 하고
다시 본 회차 주제에 집중!
소재의 존재 가치도 제대로 모르면서
강의를 하고 다녔다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날의 연속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오가 불끈 솟았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나 덤벼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료 찾기에 매진했다.
그 첫 번째는 크라프트지가
우리나라에 언제 수입되었는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에 대해
탐색하던 어느 날,
근대 한국사의 한 자락에서
놀라운 기록을 발견했다.
•분만 시 사용하는 깔개로는
•병원에서 분만한 것을 포함하여
•군부의 2.1%, 시부의 11.2%가
•깨끗한 천을 사용하였고
•시멘트 댓종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군부에서는 62.1%,
•시부에서는 49.6%로
•깔개로서의 사용이 비율이 가장 높다. •이것은 비단 시멘트 댓종이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비료 댓종이와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두꺼운 종이류 일체를 뜻한다
동아일보 1967년 5월 18일 기사 (통계)
•1960년대 한국의 농촌이나
•도시 여성 대부분이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출산했고,
•깨끗한 천이 아닌
•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군부(郡部)란 :‘○○군 지역’, 하동군 등 군 단위를 의미하고
시부(市部)란 :‘○○시 지역’, 서울시 등
시단위를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당시의 '종이'는
단순한 포장재가 아니었다.
절박한 삶의 순간,
그것은 생명의 무대가 되었고,
어머니의 손에 들린
단 하나의 길이었다.
그 시절
출산의 현장에서 사용된 종이가
오늘날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든,
바로 그 크라프트지였다.
놀라운 역사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나 역시 종이 위에서 태어난 셈이다.
음,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그렇다.
내가 세 살이었던 1969년이었다. 친정어머니께서 내 동생을 낳던
그날의 장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으면
겨우 세 돌 지난 아이의 기억에
어제 일처럼 이렇게
또렷이 남아 있었을까.
외갓집 마당에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던 나는
엄마가 누워 있던 자리가
내가 알고 있는 보들보들한
이부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아주 얇은 무언가가
반짝반짝하는 것이 보였고
어머니의 신음소리와
붉은 물빛이 보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며
방문이 닫히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신문기사를 덮고,
노트북에서 잠시 떨어져
눈을 감았다.
눈이 매워졌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종이라니...”
그 순간,
작업대 위에 놓인
크라프트지 완충재와
질기게 꼬인 종이끈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쩌면 이 종이를,
이 끈을...
그저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가까이 두고 살아온 이유가
이래 서였나.
1995년에
처음 손에 잡았던 종이끈.
그리고 그날 이후로, 서른 해.
올해로 꼭 30년,
이 질긴 종이끈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온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종이노끈으로 여름 가방을 짜고,
여름 쿠션을 짜고,
여름 가리개를 짜냈는지
여름 깔개를 짜고 선물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이 종이에게 마지막까지 안겨,
관 속에 함께 들어가자는
유언을 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