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5
2018년 5월 5일,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박경리 문학관이 위치한 평사리 언덕에
종이로 제작된 '화분' 한 점이
설치되었다.
다음 날 진행될 박경리 선생님
타계 10주기 헌화에 사용될 화분으로
최영욱 관장님의 특별 주문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그 해 2018년,
3월 5일부터 5월 31일까지 나는
박경리 문학관 관장님의 초대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지, 그 무한한 가치]라는 주제로,
크라프트지 노끈과 한지의 가치를
우리 일상으로 더 자주 초대하자는
의미를 담은 섬유공예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의 방문으로
꽤 성공적이었다.
어느 날 관장님께서 종이로
화분도 만들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종이 화분요? 얼마든지 가능해요. 크기와 목적을 알려주시면 작업해 볼 게요.
"박경리 선생님께서 화려한 것을 안 좋아하시니 자연을 해치지 않는 수수한 분이면 좋겠네. 5월 5일 선생님 10주기에 헌화용으로 쓸 거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감히.. 박경리 선생님을 위한
헌화 기념 화분을 짜게 되다니
사흘을 남겨 놓고 바쁜 작업에 돌입했다.
그전에 먼저 박경리 선생님께 신고 인사를 올렸다.
선생님, 작업 마무리 잘하도록 도와주세요. 선생님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자연을 위한 소재, 종이로 만들 거예요. 토지를 짜서 어머니의 꽃이라는 목화를 안겨 드릴 게요.
그리고 2018년 5월 5일 아침.
어디론가 멀찍이 바라보고 계신
선생님 발 아래
하얀 목화와 국화꽃이 사는
종이 토지를 놓아드렸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겠네.
생명사상에 어울리는 토지라서"
황토 흙빛을 닮은 누런 종이 화분을 보신 최영욱 관장님의 말씀이었다.
"생명, 그리고 지속"
3일 동안 종이노끈을 꼬아
꽃을 심을 땅을 일구고
버려질 때 흙을 괴롭히지 않는 소재
건강한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토지를 닮은 요람.
그 요람을 종이로 짰고
그 종이 안에서 꽃이 한 달을 살았다는
이 이야기가 내 작업 여정에서
가장 영예로운 작품이며
제일 축복받은 선물로 남았다.
이 날부터 나는,
어느 날 이 세상 떠날 때 타고 갈
종이배를 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5월 20일 즈음. 평사리 일대에 재밌는 소문이 돌았다.
"세상에, 박경리 선생님 헌화 화분 봤나?
그 꽃들이 한 달이 되도록 쌩쌩하다 카드라."
"화분은 종이로 만들었다 카든데
종이가 비를 맞아도 멀정하다카데."
"이기 무신 일이꼬? 꽃이 조화가 아니고 참말로 진짜 꽃이 맞나?"
사실,
10주기 기념식을 마친 후 그날부터
나는 기도와 함께 꽃들에게 물을 먹였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조리개에 받아
듬뿍듬뿍 맛있게 먹이며 기도 했다.
선생님, 이 생명들
오래오래 지켜 주세요
그렇게 매일 새벽과 저녁마다
종이 토지가 젖도록 물을 주었다.
흠뻑 흠뻑.
무딤이 들판에 잠들었던
초록 밀 색을 다정하게 깨우는
새벽빛을 마중할 때, 한 번.
한여름 같은 5월의 낮 더위를
차분히 데려가던
오후 해를 배웅할 때, 또 한 번.
꽃들에게 물을 먹이면서
박경리 선생님께 드렸던
기도이기도 했다.
그 열흘동안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주문처럼 읊었던
스무 번의 기도를
꽃이 알아 들었을까..
선생님이 알아주셨을까?
도저히 치워버릴 수 없게
소중한 '생명'을 스무날 동안 자랑하며
생생하게 살아낸 동화 같은 꽃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문학관 관리하시던
공이모님도 물을 주시고
은숙 씨도 물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20여 일 후.
한여름 땡볕 같은
무더위 속에서 꼿꼿하게 살던 꽃들이
제 생을 마감하고 다시 흙이 되었다.
남아있는 내 시간 동안은
'생명'이란 이름이 품은 진리는
관심과 실천이라는 것으로
기억할 것 같다.
사람들은 한 여름 땡볕 같은
5월 햇볕 속에 그리 오래 버틸 줄은
어느 누구도 몰랐다고 했다.
무척 뜨거운 5월이었고
해가 가까운 언덕이었다.
공이모님과 은숙 씨
그리고 강주사님이 말했다.
모두의 관심이 지켜 낸 생명이라고.
생명은 관심이라고.
모든 자연의 생명 못지않게
사물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박경리 문학관 숲에 설치한
"대꽃" 작품을 보며
꽤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