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달아항의 그 집

2020.08.05

by 종이소리


꾸준하다.

이런 풍경 앞에 설 때마다

물음표를 띄우는

내 욕심은.


사라져야 할

위기의 마을 이야기를

시대에 맞는

공간정비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멸실할 것이 아니라

마을문화유산으로 단장하고

함께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현대적인 건축물과

인, 아웃테리어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마을 안에

이 집은 흉물스러운

폐가로 존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마을역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마을의 문화유산,

역사유산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인정하고

지자체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화재만

문화유산일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과 골목길의 풍경도

시대적 유행에 따라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겪으며

현재를 지나고 있다.


재건축과 정비를 통해

변화된 이웃과 달리

이 집은 지어질 때

그대로의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한 채

현대적 문화풍경으로 탈바꿈한

마을 안에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까지 살아 내고,

또, 살고 있는

마을의 어제,

기록 그 자체가 아닐까.


언젠가 TV 한 프로그램에서

이 집을 연예인이 구입하고

리뉴얼한다는 장면을 보았다.


새 주인이 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도 나처럼

집이 전하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짙은 안개와

덩굴에 휘감긴 폐가가

마치 잊히기를 거부하는

시간의 조각처럼 섯는

그 처절한 메시지에

직감한 것일까?


어쩌면 다정한 새 주인을

집이 먼저 알아본 건지도

모르겠다.




2020년 8월 5일,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에 있는

달아항을 찾았다.

낙조가 아름답기로

이미 이름난 곳이다.


어촌뉴딜사업의 컨설팅을 위해

잠시 들른 길이었지만,

내 마음에 오래 머문 건

사업계획서보다

한 채의 집이었다.


덩굴에 휘감긴 채

뿌리처럼 자리 잡고 있던

그 집은

안개 낀 아침의

뒷산을 배경 삼아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미소,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탄생,

누군가의 장례,

수많은 사연들이

덩굴처럼 서려 있었을

그 집 앞에서 나는

이것이 바로

'장소성, 역사성'이라고

감탄했다.


마을은 환경에 따라

장소성’을 갖는다.

그 땅의 냄새,

바람의 방향,

오래된 담벼락에 기대 선

나무 그늘 하나까지

모두가 그 마을만의

얼굴이 된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현대의 무기 앞에서

이런 풍경들은

종종 너무 쉽게 멸실된다.


나는 그 집 앞에서

묻고 싶었다.

이 집이

정말 흉물스러웠을까?


현대식 인테리어로 단장된

이웃들 사이에서

이 낡은 집은

오히려 마을의 어제를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진 않았을까.


국가가 정한 문화재만이

특별한 유산이 아니다.


살아낸 집,

그 자체가 마을의 역사이며

지나간 시간의

정직한 기록이다.


사진으로 담고,

글로 남긴다.

이런 일이,

어떤 위로나

자극이 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 시간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 집도, 그 골목도,

사라지기 전에는

살아 있었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