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1월 21일 저녁, Annenberg 21-46, Mount Sinai Hospital, New York)
밤 10시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모든 소리가 잠들기 시작하는 시간, 라디오는 그제야 나에게 소리 내기 시작했다. 신해철, 유희열, 이소라를 거쳐 성시경이 군 입대할 때까지 난 꽤 성실한 애청자였다. 그의 울먹거리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난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의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졸업했다. 한 달 후면 출근할 회사가 있었다. 아니, 있는 줄 알았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올해 신규 채용은 없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고 했다. 역시 나에게 쉬운 인생이란 없다. 그냥 잠시 행복했던 것으로 치자. 습관처럼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는 분명 감미로웠을 것이다. 애청자들의 사연은 분명 가슴 찡하거나 재미있거나 생각해봄직한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미안 하지만 디제이가 누구였는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사연은 말할 것도 없다. 듣는 내내 우울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라디오가 그냥 거추장스러워졌다. 아무 말도 듣기 싫었다.
직장 생활한지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 때 즈음, 한해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타지에서의 오랜 직장 생활은 나에게 고독을 마주할 수 있는 노련함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저기 마음속 깊은 한 켠, 무슨 감정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마음은 사라지고 있었다. 몸이 피곤한 것과 마음이 힘든 것이 잘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아플 때는 엄마 나 아파, 전화해서 투정 부리는 것은 어릴 때 하던 일이다. 어른이 된 나는 혼자 꾸역꾸역 약국에 가서는 약을 사 오고, 빈 속이지만 소화제 들어있다고 했으니까 일단 약을 먹고,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낫겠지 하고는 침대에 눕는 건 평범한 일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는 그러한 때는 꼭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프다고? 갈비탕 사갈까, 뭐 필요한 거 없어? 약은 먹었어? 처음에는 그냥 귀찮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랬다. 난 나 자신을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이야. 조금 전에 옷도 잘 껴입고서는 약 사러 나갔다 왔단 말이야. 정말 고마운데 괜찮아. 오지 마. 나 잘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연한 어떤 마음들이 닳아 없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 힘들어 라고 하면 너만 힘드냐 란 핀잔을 들었다. 나 아파 그러면 어른이 되가지고는 네 컨디션 하나 조절 못하냐고 나무라는 말을 들었다. 몸도 마음도 강철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냥 하루하루 꺼이꺼이 뜀박질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꼭 이래야만 했을까. 이 세상에서 날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비장함, 직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면 언젠가는 도태할 것만 같은 두려움, 결혼이라도 하면 지금까지 노력한 모든 것이 한 순간 끝나버릴 것 같은 억울함, 그러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런 감정들은 어떻게든 버텨서 나의 강함을, 나의 철듦을, 나의 어른스러움을 증명해야겠다는 오기를 낳았고 부추겼다. 그렇지만 정말 이래야만 했을까.
별안간 나에게 과연 어떤 종류의 긍정적인 감정, 어쩌면 남들은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그런 감정들이 남아있을까 궁금해진다. 아. 생각이 많아진걸 보니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 또 나를 다그친다.
어제까지는 엘리뇨 때문에 15도를 넘는 봄 날씨였다. 오늘 느닷없이 영하로 떨어졌다. 히터가 어디 있나. 가장 높은 온도로 맞춰놓고는 차 끓일 물을 올린다. 친구가 선물로 준 홍차를 마셔야겠다. 아니다. 감기 걸릴지 모르니 지난 주말 사 온 유자차를 마셔야 할 것 같다. 비타민도 미리 먹어두자. 오늘은 엄마가 사 주신 예쁜 찻잔에 마셔야지. 아참, 냉장고에 치즈케이크 한 조각 남아있지, 같이 먹어야겠다.
케이크 상자를 연다.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 홀로 중심을 잘 잡고 있다. 포크를 들었다. 아참, 엄마가 포장된 그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또 상자 채로 먹을 뻔했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라면은 냄비 째 먹지 말아라. 상자나 포장용기에 들어있는 음식은 꼭 예쁜 그릇에 꼭 옮겨 담아 먹어라. 설거지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말아라. 너 자신을 귀하게 여겨라. 엄마는 정확히 아셨다. 내가 설거지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그런데 엄마는 나의 효율적인 식습관을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증거인양 말씀하셨다. 아이참. 그래. 엄마가 그 예쁜 찻잔이랑 같이 사주신 접시 있잖아 거기에 담자. 옆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담는다. 케이크는 여전히 중심을 잘 잡고 서 있다. 예쁘게 서 있다.
마침 물이 끓는다. 찻잔에 유자청을 담고는 물을 부을 찰나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사주신 것은 하얀 도자기 찻잔 세트다. 주전자랑 찻 잔 두개, 잔 받침 두개다. 오래전에 찻 잔 하나를 깬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사실 세트인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끓은 물을 그 도자기 주전자에 붓는다. 유자청이 든 찻잔을 잔 받침 위에 얹는다. 또 다른 잔 받침에는 이미 케이크가 놓여있다. 처음 들었던 포크는 케이크 옮길 때 썼으니 자신의 사명을 다한 포크는 그냥 설거지 통에 넣는다. 싱크대 서랍을 열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포크를 찾는다. 유자차를 저을 스푼도 찾는 중이다. 식탁에 하나씩 정성스레 놓는다. 내가 앉았을 때 오른쪽 먼 곳은 주전자 자리다. 그 앞으로 왼쪽에는 치즈케이크, 오른쪽에는 유자청이 든 찻잔이 놓인다. 포크는 치즈케이크 옆에, 스푼은 찻잔 옆에 수줍게 놓인다.
식탁에 앉는다. 이제 물을 붓는다. 유자청이 물 위로 올라오는 것도 있고, 여전히 바닥에 붙어있는 것도 있다. 스푼으로 젓는다. 떠오르는 유자청이 바닥에 계속 가라앉는다. 델까 조심스레 홀짝인다. 오른손으로는 찻잔의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찻잔 몸통을 감싸 쥔다. 참 따뜻하다. 그러고 보니 식탁 한 켠에 우리 가족사진이 있다. 늘 있던 그 자리에 놓여있어서 평소에는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새삼스레 아빠, 엄마, 여동생, 남동생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참 촌스러운 사진이다. 이게 언제였더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 나 졸업식 마치고 다 같이 찍은 우리 가족 역사상 첫 가족사진이다. 참 빨리도 찍었다.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아닌 게 다행이다. 그때의 나는 참 못생겼었다. 동생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훨씬 젊고 멋있고 아름다우셨다.
치즈케이크를 한번 먹어볼까나, 포크를 집어 든다. 부채꼴의 호부터 잘라한 입에 넣는다. 맛있다. 다른 케이크들은 폭신폭신해서 금세 삼키게 되는데 치즈케이크는 찐득찐득하다고 해야 하나 혀 위와 입천장 사이에서 사탕 녹여먹는 것처럼 먹게 된다. 맛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는 조각 케이크를 드실 때 부채꼴의 중심부터 잘라 드신다. 그렇게 엄마랑 나는 케이크 한쪽을 나누어 먹을 때면 각자 케이크의 반대편에서 먹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누가 더 많이 먹었는지 알 수 없게 케이크의 중간 부분만 남는다. 마지막 한 조각은 항상 내 차지였던 것 같다. 엄마는 너무 달고 느끼하다고 하시면서 네가 먹으렴하셨다. 마지막 조각 먹으면 살찐다니까 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미 케이크는 내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정말 치즈케이크가 달고 느끼했을까. 갑자기 여쭤보고 싶어 진다.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엄마는 바쁘신가 보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버린다. 나중에 다시 걸지 뭐. 아님 엄마가 전화하시겠지. 또 포크를 들어 치즈케이크를 자른다. 이번에는 부채꼴의 중심을 자른다. 부채꼴 호 한번, 중심 한번 이렇게 왔다 갔다 케이크를 자르며 먹고 있다. 그동안 유자차가 식었다. 주전자의 물도 식었다. 난 다시 식탁에서 일어나 물을 끓이고 유자청을 좀 더 찻잔에 담으려고 했다. 아니다. 이번에는 친구가 준 홍차를 마셔야겠다. 그러고 보니 치즈케이크가 좀 달고 느끼했던 것 같다. 깔끔한 홍차가 더 낫겠다.
유자차를 마셨던 찻잔을 씻어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어보니 찻잔이 따뜻해졌다. 다시 그 물을 버리고는 뜨거운 물을 새로 붓는다. 그리고 홍차 티백을 넣어 우리기 시작한다. 비 오기 전날의 석양처럼 붉은빛, 주황빛, 검은빛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 그러나 탁해지기 전에 티백을 꺼내어 찻잔 받침에 두었다. 그러고는 홍차와 함께 중간 부분만 남은 치즈케이크를 먹는다. 엄마는 바쁘신가 보다. 연락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 중이다. 문득 라디오 생각이 난다. 참 새삼스럽다. 오랫동안 라디오를 켜본 적이 없다. 집에 라디 오를 두지도 않았다. 다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 얘기했던 팟캐스트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튠즈에 들어가 보았다. 외국어 관련 팟캐스트가 많은 것 같다. 다시 이렇게 저렇게 창을 옮겨가며 제목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러다 친근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김영하, 이동진.
김영하 씨는 최근에 읽은 이상문학상 소설집에서 “옥수수와 나”를 통해 처음 만났다. 한창 재미있게 보다가 소설 말미에서 꽤 당황해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닭이 되어버리는 힘 빠지는 판타지. 그런 그가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조금은 로맨틱한 제목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어떤 책을 재미있어할까, 그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소설을 쓸까 너무나 궁금해진다. 이동진 씨는 영화평론가로 TV에서 많이 보던 분이다. “빨간 책방”이란 제목에서 풍기는, 뭔가 불온서적 같은 제목. 정말 내 취향이다. 유희열 씨가 자신을 묘사할 때 쓰는 “감성변태” 란 말을 나도 애용하니 말이다. 그래. 이 두 개의 팟캐스트를 구독해야지 버튼을 누른다. 자동으로 최근 팟캐스트가 다운로드되기 시작한다.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 딸 잘 지내? 물어보신다. 직장 동료랑 이러쿵저러쿵 지내는 이야기, 물론 대부분은 열 받은 이야기이다. 프로젝트 마감이 곧 다가오는데 별 진척이 없다는 이야기, 친구 누구가 돌아오는 봄에 결혼한다는 이야기. 늘 하는 이야기다. 그러다 엄마, 그거 있잖아. 엄마가 사준 그 도자기 찻잔 세트, 나그거 다 꺼내서 지금 차 마시고 있어. 예전에 내가 잔 하나 깬 거 그거 말이야. 주전자 처음 써봤는데 생각보다 물이 별로 안 들어가네. 그리고 빨리 식어 엄마. 예쁜데 불편해. 내 말을 받은 엄마는 솔깃한 제안을 하신다. 아, 그래? 그럼 다른 주전자 사줄까? 아니다. 잔도 하나 깨졌으니 새 세트로 사줄게. 혹시 또 깨질지도 모르니까 이번엔 4인용 찻잔세트로 사줄게. 곧 새 것이 생기게 되었다.
어디나 놓으면 좋을까, 장식장을 쳐다본다. 이번 것은 상자 채로 두지 않을 것이다. 잘 꺼내서 장식장에 두고 엄마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차를 마시련다. 그리고 다운로드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읽었던 책이건 앞으로 읽을 책이 되건 간에 김영하 씨와 이동진 씨 목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련다.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되어보련다. 본래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련다. 내가 닭이 되는 것도 이제 사양하지 않으련다. 밥 말고 옥수수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리라. 비장함, 절박함, 두려움, 억울함, 불안감. 이젠 안고 사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이겠는가. 나보다 더 지질한 사람들도 소설 속에서 잘살고 있지 않은가. 힘들다 생각되면 책을 펼 것이다. 팟캐스트를 켤 것이다. 어떤 주인공이 절망적인 선택을 할 때마다 난 그의 공범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절망으로 끝나든 성공으로 끝나건 간에 본래의 나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그와 함께 할 것이다. 그의 절망이 나의 절망이 될 것이고 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난 책을 덮을 것이다. 팟캐스트를 끌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조금씩 끄적여 볼 테다. 내가 좀 더 안심해도 되는 곳을 조금씩 만들어 보련다. 내가 좀 더 약해도 되는 곳을 만들어 보련다. 그곳으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련다. 아니, 나처럼 겁먹은 사람들을 이 곳으로 초대해야겠다. 이제는 조금 전보다는 덜 비장해도 되고, 조금 전 보다는 덜 절박해도 되고, 조금 전보다는 덜 두려워해도, 덜 억울해도, 덜 불안해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로받는 것을, 도움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 늦었다. 다운로드한 것 들으면서 잠들고 싶다. 성시경이 밤마다 이야기해 주었다. 잘 자요. 김영하 씨의 클로징 멘트가 뭔지 궁금하다. 말랑말랑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