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II
(Marc Chagall, Lovers among Lilacs, Metropolitan Museum, May 26, 2016)
당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 나도 같이 보고 싶어 졌어
난 늘 내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는 게 중요했는데
당신은… 세상을 참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
당신도 언젠가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랑 같이
당신에게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아빠의 한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어
그게 얼마나 날 안도하게 했는지
아마도 당신에게 반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건 언제였을까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내가
그래서 우울해지기 쉬운 성격이라고 핀잔 듣는 내가
생각하는 것 자체를 꼭 잘못하는 것인 것 마냥 움츠리게 될 때가 많았는데
당신은 그게 괜찮은 거라 그러네
제일 좋았던 게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여도 좋을 것 같았다는 것
당신이 더욱 당신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나의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
당신의 손과 나의 손이 닿았을 때
당신이 내 등을, 내 어깨를, 내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있었을 때
뿌리치지 않았던 내가 하도 신기해서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 무엇인지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내가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계속 손 흔들어주던 당신이,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당신이
버스 안에서 내내, 그리고 그날 밤부터 주욱
당신이 보고 싶고 보고 싶었던 것 같아
우리 둘 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니까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분명하고 다르지만
설득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그런 우리는
아무리 달라도 이야기하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줄 알았던 우리는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더라.
그래서 우리는 연애만 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