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진심이세요?
호의로 건네는 말들은 어디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어디까지를 예의로 여겨야 할까.
지금은 막역한 친구들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종종 한다. 당시 어색한 사이었던 친구의 “언제 밥 한번 먹어요” 라는 말에 나는 “언제요? 저는 빈말 싫어해요” 라고 대답 했다는데. 얼마나 경악스러웠을까. 당황한 친구가 일대 일로는 만나기 어색한 마음에 다른 친구를 데려왔고 우리 셋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다소 격한 수준이긴 하지만 나는 이 정도로 빈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콜과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는 내가 자기를 보러 런던에서 LA까지 온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누군가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이렇게 노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오랜 시간 그저 빈말이었던 누군가의 호의를 진심이라 믿고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콜에게는 자연스럽게 상대가 하는 말을 곧대로 믿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러는 동안 나도 상처를 받았다. 내가 특별하다고 믿었던 인연이 사실은 별게 아니었구나 하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콜은 한 달 내내 미안하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렇게 서로의 오해로 연이 끊어질 뻔할 때가 있었다. 내가 콜의 제스처를 거절로 받아들였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었을거다. 다행이지만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너 처음에 나 별로 안좋아했잖아” 라는 농담을 아직까지 한다. 그때마다 콜은 “진심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 믿는게 힘들었다”고 몇번이나 말한다. 나는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며 대대 손손 이 사건을 이야기 할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동네를 지나다가 한 가족이 콜과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옷이 너무 예쁘다며 첫 운을 떼더니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연락처를 물어왔다. 그녀는 이따 저녁에 홈 파티가 있으니 들르라고 했다. 우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들은 무척 반가워 하면서도 계속 진짜 나타날줄은 몰랐다는 말을 반복했다. 호의로 한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것 같아 괜히 민망했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냥 인사치례로 한 이야기를 우리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건가? 아니 그냥 예의상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연락처를 다 물어보나? 얼마 후 우리는 동네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오니 그녀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이번 주말에 함께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또 과일과 치즈를 사고 약속 날을 기다렸다. 그녀는 약속 한 시간 전에 핑계를 대며 피크닉을 취소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집에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콜은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안. 스스럼 없이 다가와서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 약속을 잡고 차일피일 미루고는 흐지부지한 사이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여전히 빈말이 싫다. 어떻게 해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지 아직도 요령이 생기질 않는다. 진심이 아니면서 친절한 사람들에 지쳤고, 마치 마음을 덜 주는 사람이 이긴 것 처럼 보이는 게임이 지겹다. 하지만 이 게임 속에서도 용기를 내서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만이 진짜를 얻는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일 순 없겠지만 진심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곁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주말에 갔던 휘슬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