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인의 선택

by 복사꽃향기

미혼인 딸아이가 김포 한강신도시에 자립으로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를 했다.


주위엔 한강 물줄기를 끼고 흐르는 '라베니체'는 유럽느낌이 나는 이름만큼이나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며 다양한 상가들이 주위 경관들과도 잘 어울리게 꾸며져 생활하기에도 편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사한 딸아이 집에서 며칠 머무르는 동안 내내 감탄을 하곤 했었다.

길 따라 널찍한 산책로가 있고 주변 경치를 돋보이게 해 줄 아름드리나무들도 잘 정비되어 산책하는 동안 작은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 딸아이가 생활할 곳이라는 생각에 좀 더 꼼꼼히 주위를 둘러보고 다녔다.

그러다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모담공원'이란 곳이었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하루 날을 잡아 무장을 하고 '어느 쪽으로든 길이 나 있겠지' 하며 무작정 걸어 올라가 보았다.

초행길이었기에 여러 갈래로 난 길을 따라 돌고 돌아 정상까지 나름 예쁘게 꾸며놓은 소박한 정원을 거쳐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아기 개울을 건너 누구나에게 허락된 쉼터 거네까지 탐닉하고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올라갔다. 적당한 숨차기가 기분을 더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 멀리 어슴푸레 서울한강이 보인다.


잠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한번 둘러보다 혼자 계신 한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곱고 맑은 피부에 깔끔하고 귀티 나는 어르신이었다.

그런 외모에 비해 웃음기라고는 없는 얼굴에 뭔가를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옆에 계신데 모르는 척하기도 뭣하고 해서 멋쩍게 인사를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며 "안녕하세요?" 했다. 왠지 반응이 시큰둥하다.

나이가 들면 보이지 않는 어떤 내공이 쌓인다. 해서 느껴지는 분위기로는 무엇인가 고민이 있는 듯했다.

더 이상 말을 걸지 말까 생각하다 속얘기를 좀 들어주자는 생각에 미치자 그분의 무심한 행동이 그다지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말을 걸었다.

"운동하러 자주 오세요?"

자존심에 마음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지만 낯선 나그네의 작은 관심이 내심 싫지는 않은 듯 나의 물음에 억지로 한 마디 던져 주기도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외다리를 건너듯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고민되는 게 있나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어째보면 이 얼마나 무례한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물어달라고!

그사이 믿음이 조금 생기셨는지 아니면 물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그제야 속얘기를 하신다.


삶이 다 그렇듯 힘들 때 가끔 누군가에게 답답한 심정을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특히 모르는 관계일수록 더 좋을 수가 있다. 그래서 남이 더 편하다.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쉽게 터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분은 70대 초반이며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을 한 후 모든 의욕과 자신감이 다 떨어져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무료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가족이나 주위에서 취미생활. 운동 등을 권해도 다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만 한다고 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마 이 조차도 체념하고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고민으로 가지고 있지도 않았겠지만.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던 사람이 그 일을 하지 못할 때의 상실감은 스스로 가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며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온 분이 아무 일이나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제약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정한 규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똑똑한 사람임에도 제2의 인생을 사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는 하고자 한다면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데도 말이다.


고민을 듣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일이 맞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분은 직업의 연장선에 있어야 의욕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그분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보았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행정복지센터나 평생교육원이나. 노인을 위한 시설에서 한글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전해 보았다.

"그런 곳도 있느냐?" 며 반색을 하셨다.

교사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시작해도 어려움이 없을 것 같고, 삶에 대한 동기부여도 될 것이며, 또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좋은 정보도 나누고, 친구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의 진행형 노력들에 대해 말하며 보람과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태어 설명을 했다.

심사숙고해 보시고 좋은 쪽으로 선택하시기를 바란다며 집으로 돌아오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대화하는 내내 아무 미동도 없이 듣기만 하시던 여사님이 갑자기 거침없이 내 두 손을 불쑥 잡고는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보내 준 것같다" 며 고민을 들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 과하게 표현을 해 주셨다.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처음 본 나그네의 오지랖 넓은 말을 진심으로 받아주신 데 대해 감사함이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나를 더 깊이 사고하게 만들었으며 '과연 내가 저 어르신께 조언을 해줄 자격은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 자기반성을 많이 하면서 내려왔다.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지금 어떻게 하루를 대해야 할지 그분을 생각하며 더 가늠해 보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이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그분 생각으로 꽉 찼다.


과연 그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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