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이력서

by 차은숙

도서관 책장은 6단 선반이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철골로 만들어진 단단한 몸체다.

선반 한 칸은 90센티 정도,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은 40권 남짓, 시집처럼 날씬하고 정갈한 책들은 70권 정도가 책장 한 칸을 꽉 채운다.


도서관 책장은 책의 집이다. 이 책들은 책장 자기 자리에 꼿꼿이 서서 기다릴 때가 잠자는 때이고, 누군가가 불러내서 대출반납기에 누울 때가 깨어나는 때다. 책은 집을 떠나 미지의 누군가와 여행을 시작하는 거다.


대출된 책이 빠져나간 책장의 빈자리를 보며 문득 생각해 본다. 책장은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 옛날 두루마리를 놓아두었던 책장, 초기의 코덱스를 보관했을 책장, 중세의 수도원에서는 책을 사슬에 묶어 독서대에 고정시켰다고 한다. 조선시대 책가도에 보이는 책장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다가 인쇄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책을 만들고 책등에 제목을 쓰고, 책꽂이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책꽂이에 꽂힌 책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기술(?)을 만들기까지 천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책장을 보며 내 책장의 이력서도 써본다.

우리 집 첫 책장은 적갈색 5단 서랍장이었다. 서랍장 위에 2단 선반을 짜고 미닫이 유리를 달아 진열장 역할을 겸한 가구였다. 그 선반에 우리 집의 봄직하고 간직할 만한 것을 두려 엄마가 야심 차게 장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다지 윤택한 살림이 아니었던 터라 진열장을 채울 반짝반짝 빛나는 살림살이는 적었다.


어쩌다가 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 책 한 질을 상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우리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가정생활 대백과가 전부였다. 베개보다 두꺼운 온갖 내용이 다 들어 있는 책이 우리 집 도서계의 일당백이었다.


그 진열장은 한 번 책장이 된 뒤로는 책 읽기에 빠진 내가 간신히 장만한 책들이 한두 권씩 입주했다. 그러다가 언니와 오빠 중 누군가 샀을 월부 책이 생겨 2단 선반을 가득 채웠다. 하드커버에 금장 글씨를 가진 그야말로 반짝이는 진열품이 비로소 채워진 거였다.


그 뒤로 집을 새로 짓고 각자의 방이 생겨, 그 합체 가구는 안방에 그대로 두고 나는 내 책장과 책상을 갖게 되었다. 나의 첫 책장은 2단 선반마다 미닫이 유리가 달린 6단 책장이었다. 책장에는 지방 소도시의 헌책방을 드나들며 내가 사기 시작한 책들이 모였다.


한 권에 몇 백 원 하 삼중당 문고 시리즈는 책 사는 기쁨을 듬뿍 안겨 주었다. 수 백 종이나 발간되었고, 국내소설, 시, 수필, 번역서 등 종류도 다양했다. 동서문화사 번역서들은 2단 세로 쓰기라 곧잘 읽고 있는 줄이 바뀌었다.


담담한 노란색 표지의 어느 문화재단 책들 과월호 문학잡지까지 돈이 자라는 데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오면 ‘양식’ 장만하듯 든든했었다. 문고본으로 채워가기에 책은 작았고 책장은 컸다. 고등학교 때까지 첫 책장을 채우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마침내 가정생활 대백과 보다 더 두꺼운 국어사전을 사고, 문고본이 아닌 큰 책을 샀고, 책장을 하나 더 장만했다. 유리문이 달리지 않은 5칸 책장이다. 그러다가 책장 하나와 책 박스 몇 개를 들고 대도시로 이사를 했고, 학교를 다니며 책장이 하나 더 많아졌다.


이후 직장생활에서 책장은 몇 달마다 하나씩 늘었다. 검은색, 갈색, 녹색, 적갈색 다시 갈색 그때마다 색깔도 크기도 달라졌다. 결혼하면서 책장도 결혼식 하듯 합쳤다. 신혼집 장만하듯 책꽂이를 짰고, 가장 큰방의 벽에 모조리 책장을 두고 나니, 드디어 나의 작은 성을 마련한 것 같았다. 그리고 여태 이리저리 책장을 옮기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자주, 오래 책과 책장을 보게 된다. 그래서일까 튼튼하고 너른 책장들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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