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현실과 멀지 않다
별종, 우리는 특이하거나 나와 극명하게 다른 이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다.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는 항상 별종이 등장한다. 남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남들과 다른 세상을 보는 이들. 팀 버튼의 《빅 피시》에서도 현실을 상상으로 남는다 라는 글에서 썼듯이 그는 상상과 현실의 동 시간적 환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그의 특유의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한다.
본 영화 속에서 별종들은 다수에 의해서 괴물 취급을 받는다. 그런 아이들을 보살피는 이는 미스 페레그린, 그녀는 시간을 24시간 전으로 돌리는 루트를 만들 수 있다. 1943년 9월 3일, 영원한 하루를 보내는 그들에게 '제이크'라는 사내아이가 찾아온다.
할아버지의 의문의 죽음의 단서를 찾기 위해 제이크는 미스 페레그린을 찾아 한 섬으로 오게 된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1943년 9월 3일에 파괴되었던 어린이집 말고는 없었다. 두리번 대는 제이크에게 한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놀란 제이크는 도망가다가 걸려 넘어져 기절한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그 순간, 정확히 말하면 안정된 그 순간을 영원히 갖고 싶어 한다. 어쩌면 '영원' 그 자체, 그 매혹적인 성격은 인류 역사에 종교, 전쟁, 정치 등 다양한 장르를 초월해서 나타나고 있다. 갈망하는 것을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은 욕망. 그러나 본 영화 속에서는 영원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욕망이 투영된 영원의 모습 그리고 다수에 의해 별종으로 정의된 이들의 도피처의 24시간의 루틴.
영원한 하루는 불교의 가치관과 상응한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는 과거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이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올 미래 또한 현재로 지나갈 무언가 일 뿐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 진실되게 존재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인식하는 그 자체, 더불어 그 이상의 경지는 그 인식 자체도 무위의 시간 아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의 시간은 욕망을 피해 달아난 영원 속에 있다. 하루하루 매번 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그 안에서 만족과 자그마한 변화만 원할 뿐이다. 다가올 변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네 삶의 모습이 보인다.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시》에서도 고립된 영원한 평화는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본 영화와 빅 피시를 아마 많이 비교할 것 같은데, 인물의 패턴과 이야기 흐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빅 피시에서의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전해준 이야기와 본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제이크에게 전해준 이야기 그리고 그 일을 믿지 않는 아버지의 설정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진실된 이야기, 어쩌면 현실에서 허황된 무언가로 평가되는... 정말 소중한 꿈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듯하다.
꿈은 현실과 멀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