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던, 아이의 마음을 다시 보다.
어린이집 발표회 날이었다.
둘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어려워했다.
네 살이었으니 거창한 무대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서서
"감사합니다." 한마디를 맞추는 순서였다.
그것만으로도 어른들은 귀엽다며
박수를 쏟아낼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품에 꼭 매달려 옷자락을 잡고
떨어질 줄 몰랐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처음엔 조용히 달랬다.
"지금은 안 하고 싶어? 그럼 조금 기다려보자."
마음을 추스르면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의 무대가 끝나고
형님 반 공연이 이어질 때까지
아이는 여전히 내 품에 있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토닥이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왜 너만 이럴까?'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될 텐데.'
그리고 어느새 화가 났다.
무대 앞쪽에 앉아 있던 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이 왜인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주말에 놀이터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출근하느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 봐주신다면서요.
손주 보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시겠어요."
그때는 그냥 스쳐 들었는데
그날은 그 말이 유난히 크게 귓가에 맴돌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는 내 품에 꼭 매달려 있었고,
나는 아이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려웠다.
'내가 직장에 다녀서 그런 걸까?'
'다들 괜찮은데, 나만 이런가.'
토닥이던 손끝이 굳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날의 공기, 아이의 체온,
등줄기로 흘러내리던 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아이가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걸.
부끄러워서 숨은 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무대에 서지 않은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그때의 행동이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도 둘째는 어떤 일이든 자기 기준이 있다.
누가 칭찬해도
"아직은 아니야." 하며 웃어넘긴다.
그 완벽함을 향한 마음은
아이의 성장을 밀어주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벽이
되기도 한다.
예전의 나는
그 벽을 대신 허물어주고 싶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는 충분히 멋져."
그렇게 말하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 벽은
내가 아닌, 아이가 직접
두드려야 하는 벽이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벽을 허물려고 애쓰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두드릴 때까지
곁에서 조용히 함께하고 있다.
그날의 발표회가 나에게 가르쳐준 건
아이의 행동을
'문제'로만 보던
나의 좁은 시선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안에는 늘
배움의 신호가 있었다는 것을.
불안은
자신을 믿고 싶은 마음의 그림자였고
고집은
자기 길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였다.
이제 되돌아보니
그날 내가 마주한 것은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아이를 바라보던 불안한
나의 시선이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아이 안에 있었다.
나는 그저
그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