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멈추라는 몸의 목소리가, 나를 다시 살렸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엄마는 버티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아이가 힘들면
더 힘을 내야 하고,
아이가 지치면
그 자리를 내가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아이의 삶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도
저녁을 차리고,
숙제를 확인하고,
수행평가 자료를 찾아주며
하루를 다 쏟아냈다.
아이의 하루를 완성하는 것이
나의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둘째가 중학생이 된 뒤에도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은 '아이'였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쉬고 싶다는
아이의 신호를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만큼 멀어졌으니,
아이가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힘들지 않도록
내가 미리 준비해놔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쉬는 법을 잊었다.
열심히 뒷바라지하면
아이도 당연히
열심히 할 거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리에 쥐가 난 줄 알았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잠시 후엔 숨이 가빠졌다.
응급실로 실려갔고,
나는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냈다.
의사는 말했다.
"완치라는 건 없어요.
이제부터는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입니다."
몸이
나 대신
말해준 것이었다.
"이제는 그만 멈춰."
병명보다 더 무거웠던 건,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나는 아이를 돌보며
나 자신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몸이 멈추자
마음도 멈췄다.
아침에 눈을 떠도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쳐 있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내 몸을 돌보는 일이
곧 아이를 돌보는 일임을
깨달았다.
몸이 단단해야
마음이 숨을 쉬고
마음이 숨을 쉬어야
사랑이 오래간다.
요즘 나는
의식적인 회복을 연습한다.
예전에는 잠시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몸을
단단히 세우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임을 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하고
식단을 챙기며
몸의 균형을 지킨다.
일에 몰두할 때도
'무리하지 않는 집중'을
스스로 점검한다.
그 과정이
나를 지탱하는 루틴이 되었다.
이전에는
쉼이 멈춤이었다면
이제의 쉼은
나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건강한 리듬 속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품을 여유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