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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Oct 22. 2023

읽기의 실패가 아니라 마음의 실패

초짜의 읽는 삶-읽기와 마음의 상관관계

읽을 수 없어 자책했다. 읽고 싶은데 자꾸만 정신이 달아나 읽을 수 없었다. 달아난 정신을 찾아 헤매는 날들이 반복됐다. '왜 자꾸만 다른 데로 샐까? 책 속 문자들에 집중하고 싶은데, 왜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책망하며 보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후회로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고 안타까워 다시 한번 절망했다.



인간의 뇌에 '책의 공간'이, '읽기의 자리'가 애당초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독서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것은 후에 매리언 울프의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책 읽는 뇌>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영상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뇌에는 읽기를 위한 영역이 단 하나도 없어요. 읽기를 위한 유전자가 없어요. 우리는 결코 책을 읽을 수 있게 태어나지 않았어요. 읽기는 문화적 발명이에요."

기쁨의 충격이 몸을 휘감았다. '없는 것'이니 애초에 '읽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스타트코리아 매리언 울프 2 -뇌에서 읽기 회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https://youtu.be/t17hl1iizPM?si=v43XpQBuLwZwdn-t



그렇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숙련된 독서가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했다. 내심으로 숙련된 독서가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소망했다. 다독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아이가 나와 놀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뭔가에 고개를 돌리면 나는 조용히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아이가 5분, 10분 정도 딴짓을 하는 동안 나는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책을 읽었다. 꾸준히 읽다 보니 조금씩 능숙해졌다.



게리 폴슨의 소설 <손도끼>를 보면 비행기 조종사가 브라이언에게 조종하는 법을 알려준다. 처음에 "안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던 브라이언은 어느새 조종하는 법을 습득하고 "여기까지는 쉽다"며 웃는다. 조종사는 그런 브라이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배우기만 하면 비행기 조종은 쉬워. 다른 것들도 그렇잖아? 뭐든지 일단 배우고 나면 쉬운 법이지." <손도끼>를 보며, 책 읽는 방법을 배우면 책 읽기가 수월해지리라 생각했다.



독서법 관련 책을 여러 권 빌려다 읽었다. 독서법 관련 책은 매우 유용했다. 특히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 최승필이 추천하는 반복독서의 힘은 정말로 강력했다. 저자는 "초등 고학년, 청소년의 읽기 열등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언어 수준에 맞는 책을 많이 읽는 '레벨독서'를 활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연령 수준에 맞는 책을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반복독서'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두 방법 모두 목표는 같습니다. 아이가 실제로 책을 읽게 하는 것, 글을 읽고 내용을 독해하는 과정을 실행하게 하는 것입니다."고 한다. 레벨독서는 자기 언어능력 수준에 맞는 책부터 시작해 자기 연령에 맞는 책까지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는 방법으로 실행하기 쉬운 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반복독서는 언어능력의 수준이 어떻든 자기 연령에 맞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언어능력에 비해 읽어야 하는 책의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아이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단기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마흔이 넘었지만 읽기 열등 상태를 개선해야 되니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소설을 빌려다 3 회독했다. 특히 청소년 소설을 3 회독했을 때 크게 향상됨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소설은 상대적으로 난해하지 않은 은유를 사용하고, 서사나 구조도 비교적 간단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쉬웠다. 자신감이 조금씩 붙어 책 읽는 재미가 생겼다.

최승필 <공부머리 독서법>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잘 읽히고 어떤 날은 잘 읽히지 않았다. 읽기 능력을 향상했으니, 단순히 컨디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니, 나는 종종 어제 일을 생각하며 과거 속에 살고 있었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에 둘러싸여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삶을 쉽게 지배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감정 코칭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 강사님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한 번 줬다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다섯 번 줘야 상쇄된다"고 했다. 그 정도로 부정성은 우위에 있었다. 진화적으로도 맞는 말이었다. 멀고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부정적인 정보를 잘 기억해야 생존에 유리했다. 독버섯이나 독을 가진 벌레들, 독이 든 열매를 머릿속에 잘 입력해 두었다가 가족과 이웃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산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얼거리듯 '감사합니다'를 되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의 저자 제니스 캐플런은 "감사는 특정한 사건에 좌우되는 감정이 아니므로 변화나 역경과 상관없이 오래간다. 감사를 느끼려면 감정적으로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자동으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시기에도 어려운 시기에도 지속하는 내면의 충일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제니스 캐플런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오감을 총동원해 온몸으로 느껴 감사해야 했다. 오늘 살아 있음에, 책을 읽을 수 있음에, 낳아주신 부모님께,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가족들에게, 성장할 수 있음에.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했다.



에피쿠로스는 "충분한 것을 너무 적다고 여기는 자에게는 그 무엇도 충분치 않다"고 했으며, 셰익스피어는 "좋고 나쁜 것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감사거리를 발견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레터를 썼다. 감사함을 지인들과 나누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감사를 느끼기만 했는데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책 읽는 것이 즐겁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어졌다. 실제로 감사를 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된다고 한다. 행복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실제로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뇌가 기뻐하는 공부법>의 저자 모기 겐이치로는 "항상 공부가 재미있어서 자진해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안의 무엇인가가 아주 기뻐했으며, 공부를 계속하면 할수록 그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그 결과 공부하면 즐겁다. 즐거우니까 공부한다는 사이클을 반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뇌는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뇌 속에서 대가를 상징하는 물질이 방출되면 강화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즉 대가를 받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던 행동을 재현해서 그 기쁨을 반복하고자 한다. 그 결과 그 행동이 숙련된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도파민이라는 물질이다."고 한다. 감사를 느끼니 행복하고, 행복하니 즐겁게 책을 읽게 된다. 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책을 읽게 된다. 결국, 독서의 성공은 내적 즐거움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읽는 뇌를 만들 것이 아니라 먼저 감사의 뇌를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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