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곤조, 혹은 시수SISU

핀란드의 국민성,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의존하지 않는 용기

by 홍정수

핀란드어 '시수Sisu'는 영어로 잘 번역되지 않는다. 구글에서 sisu를 검색하면 inner strength, determination, bravery 등으로 소개되지만 동의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비교적 비슷하고 간단하게 옮길 수 있는 것 같다. 내 기준으로 시수는 '깡'이다.




시수란 무엇인가


한국인의 정서는 '한'이라고, 한국인의 특성은 '빨리빨리'라고 한다. 핀란드는 그것이 '시수'이다. 한국어로 깡다구라고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시수는 '강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순화하자면 '강인함' 정도 될 것 같다. 단순한 터프한 게 아니라 강하고 끈질기게, 어려움을 잘 이기고 극복해나가는 것.


#예시 1. 추워도 활기 넘치는 아기곰 시수

새끼 북극곰 Sisu. by Ranuan Seudun Matkailu Oy

라누아 야생동물원의 2016년생 북극곰 이름은 '시수'다. 이름 공모에서 1만 8000개가 넘는 후보를 제쳤다. 수많은 후보들이 있었지만, 동물원은 추위와 험한 자연에도 굴하지 않고 활기 넘치는 이 꼬마의 이름으로 시수만한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참고로 시수를 제안한 94명은 선물로 동물원 무료 입장권을 받았다고 한다. (YLE 기사 원문)


#예시 2. 스포츠맨에게 필요한 시수

테니스 선수 Jarkko Nieminen.

스포츠 선수라면 시수가 필수다. 테니스 선수인 야르코 니에미넨Jarkko Nieminen이 2009년 Medibank International 준결승에서 이긴 직후 셔츠를 들어 올리며 타투를 드러냈다. 세로로 선명하게 쓰여있는 SISU는 그 의미 때문에 타투 문구로도 많이 쓰인다. 결승에서는 패배했지만, 핀란드의 탑 플레이어로서 니에미넨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근성 있게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사진 출처 https://www.tsftennis.com/tattoo-watch-jarkko-nieminen/)


#예시3. 핀란드 아이는 시수있게, 강하게 큰다

핀란드 문학 토론 시간. 맨 왼쪽이 Katya Pantzal 씨.

에세이 "Finding Sisu(시수를 찾아서)"를 쓴 Katya Pantzal 씨는 핀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영미권 국가에서 산 기간이 더 길었다.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과 모국을 외국인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시수'는 그가 찾아낸 핀란드인의 가장 특징적인 자질이었다고 한다. 귀찮고 힘든 것을 피하거나 겁내지 않는다. 걷거나 자전거로 갈 수 있는데 왜 택시를 타는가. 그냥 내가 직접 빨래를 하면 되는데 왜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기는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는 비가 오나 혹한이 오나 아이들을 바깥에 내보내고 야외활동을 한다.


시수의 반대편에는 나약함이 있다. 시수는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 힘들어도 그냥 견디는 것이고, 조금 무서워도 그냥 도전하는 것이다. 그럼 점점 강인해지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Pantzal 씨는 시수가 "뭔가를 해내도록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다소 방치하는(?) 핀란드의 영유아 교육과도 맞닿아있다. 그녀의 설명을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해 둔 FCP 블로그 포스트를 링크해둔다(https://fcp.finland.fi/finland-a-sisu-society/)





시수는 곤조인가


일본인 친구도 말하길, 일본에도 시수 비슷한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곤조(근성)'라는 것이다. 그렇게 Korean Sisu인 '깡다구'와 Japanese Sisu인 '곤조'를 비교하게 됐다.


한국어의 '곤조'는 '꼰대 마인드'나 완고한 고집과 결이 닿아있지만, 일본어의 곤조는 약간 뉘앙스가 다른 듯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곤조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반드시 마치고야 마는 인내와 끈기이며, 사람들은 특히 학교나 일터에서 곤조를 가져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노오력'과 겹치는 부분이다. 곤조가 없으면 패배하는 것,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 특유의 군대식 문화, 전체주의가 결합된 곤조는 '투혼'으로 미화되지만 실제로 개개인에게는 상당히 폭력적인 압박인 셈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5/2018102500205.html


반면 한국에서의 깡은 있으면 "오호라 이 친구~?" 하는 것이지만, 없으면 그냥 없는 것이다. 시수 역시 폭력적인 성격의 태도는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내되,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시수의 포인트는 자신의 한계치를 알고,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높여나가는 데 있다. 그리고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압박하는 게 아니라 격려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마마보이 마마걸과 헬리콥터 부모, 스스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쉽사리 겁먹고 움츠러드는 아이들... '춥고 거친 북유럽의 정신'인 시수는 이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다.



#커버: 시수에 대해 설명한 책 <시수를 찾아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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