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세계 최고가 위스키의 가격이 결정 났다. 싱글몰트 위스키인 맥캘란의 한정판 제품으로 낙찰된 가격은 152만 9천 달러. 우리 돈으로 17억 원쯤 된다. 60년간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을 했으며, 유명 화가들과 협업, 단 40병 만만을 만든 희소성 있는 제품이다. 이전의 세계 최고가는 한화로 12억 원 정도로 역시 같은 맥켈란 제품. 역시 60년 정도를 숙성시킨 제품이다. 기본적으로 위스키는 숙성을 오래 하면 할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고급성을 표방한다. 맛도 부드러워지고, 다양한 풍미가 증대한다.
그렇다면 왜 숙성은 다 맛을 좋게 하는 것일까?
발렌타인 30년
풍미가 가득해지는 위스키 및 증류주
기본적으로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숙성을 한다. 일반적으로 증류한 원액을 넣는데 70도 전후의 알코올 도수다. 흥미로운 것은 매년 2% 전후로 원액이 증발한다는 것. 나무통에 있는 만큼 완벽하게 공기와 차단이 안 되는 것이 그 이유다. 이렇게 증발하는 것을 엔젤스 셰어( 'Angels's Share')라고 하여 우리말로 '천사의 몫'이라고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마시는 분량이다. 흥미로운 것이 이 '천사의 몫'이 수분보다는 알코올이라는 것. 그래서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다 보면 알코올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초기에는 70도였던 원액이 20~30년이 지나면 50도 전후로 떨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분에서 위스키의 맛이 확 변한다는 것이다. 알코올은 증발되고 본래 가졌던 향미는 더욱 진해진다. 여기에 오크통에서 나오는 다양한 맛이 위스키의 맛과 색을 더한다. 한마디로 맛이 압축되는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물 분자와 알코올 분자가 결합하면서 맛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그윽해진다. 수분과 알코올이 서로 친해지는 것이다.
숙성을 하지 않은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 70도 전후나 되는 만큼 많은 양의 물을 넣어 40도 전후의 위스키로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낮은 원가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오랜 숙성을 통해 50도 전후가 된 위스키는 40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적게 넣어야 한다. 그만큼 원액의 비중이 높아져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20년 숙성 위스키와 5년 숙성 위스키. 위스키가 증발이 되어 양이 줄어들었다. 색도 20년 숙성이 훨씬 진하다.
집안의 장식장에서 위스키는 숙성이 되는가?
팟캐스트 말술남녀에서 실험을 한번 진행하였다. 장식장에서 20년간 숙성시킨 위스키와 이제 막 나온 위스키의 맛을 비교한 것이다. 앞서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면 풍미가 진해진다고 했는데, 과연 집안의 장식장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제품은 모두 시바스 리갈 12년 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안에서 20년간 추가적인 숙성을 진행한 시바스 리갈이 오히려 향과 맛에서 옅어졌다. 오히려 새 제품이 향미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식장에서 숙성한 제품은 병입 전의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과 달리 달리 공기와의 접촉이 전혀 없다. 또 오크통이라는 나무 통에서의 숙성이 아닌, 유리병 속의 숙성이다 보니 나무 특유의 맛과 색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히 밀폐라고 하더라도 살짝 향미가 증발된 느낌이었다.
<20년 숙성과 10년 숙성한 위스키 양의 차이. 시간이 갈수록 알코올 함량은 낮아져 맛의 풍미는 높아진다>
즉, 위스키를 집안에서 숙성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먼저 마시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단, 맛이 서로 다른 이유는 단순히 숙성의 차이가 아닌 레시피의 변화가 요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장식장에서 위스키는 숙성이 전혀 안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오크통처럼 맛있어진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발효주도 숙성하면 무조건 맛있을까?
알코올 도수 20도가 넘는 증류주와 달리 발효주는 20도 이하, 일반적으로 15도 전후의 술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경우는 잡균이 번식할 수 있다. 이러한 잡균 번식을 막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냉장 숙성이 필요하다. 또 와인, 청주, 약주, 막걸리 등의 발효주는 빛에 굉장히 민감하다. 또 움직임에도 민감하여 심한 경우 맛이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와인 등의 숙성고가 지하 또는 동굴에서 하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다. 이러한 지하 및 동굴과 같은 공간을 만든 것이 와인셀러다. 바로 빛을 차단하고, 일반 냉장고와 달리 모터 소리로 인한 진동이 없으며, 와인이 흔들리지 않게 문 안쪽으로 와인을 넣는 공간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와인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좋은 청주, 약주, 다양한 전통주도 이곳에서 숙성할 수 있다.
막걸리가 숙성이 어려운 이유
일반적인 막걸리는 발효 및 숙성기간이 겨우 2주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빨리 만들어서 빨리 마시는 술로 재료의 신선함을 추구하는 'Fresh'한 술이다. 일반적인 막걸리 알코올 도수는 6도 전후인데, 이 알코올 도수가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이 가장 좋아하는 알코올 도수다. 초산균은 기본적으로 알코올을 섭취하고 식초를 만드는데, 6도 전후라면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막걸리 식초 등이 시중에 많이 나온 이유도 이러한 배경이 한몫한다.
하지만, 막걸리 원액으로 숙성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원액은 알코올 도수 15도 전후로 잡균 및 초산균에 대해 나름 내성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100일 숙성 막걸리 등 고급 막걸리가 지속적으로 선을 보이고 있다.
숙성하면 무조건 술맛이 맛있어지는가?
결론적으로 술은 숙성하다고 무조건 맛있지는 않다. 한마디로 잘 숙성을 해야 맛있다고 할 수 있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위스키와 집안 장식장에서 숙성하는 위스키가 다르고, 온도 조절도 잘 안되는 오래된 냉장고 속에서 숙성한 와인과 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와인셀러에서 숙성한 제품이 다를 것이다. 즉, 숙성에서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 기다릴 줄 아는 정성이 필요하다. 이 정성이 제품의 가격을 쭉 올리는 것이고, 거기에 우리는 가치인정하며 지불하는 것이다.
속속들이 도입되는 숙성 전통주
최근에 우리 술 시장을 보면 오랜 숙성을 거친 술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인 안동소주 18년 숙성부터, 최근에 출시된 일품진로 19년, 여기에 막걸리 및 맑은 술(약주)도 냉장으로 100일~1년 이상 숙성시키며, 고급술 라인을 가져가고 있다. 주정에 물을 타서 바로 유통하는 기존의 일반 소주(희석식 소주)보다 원료의 풍미와 숙성이 주는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소비자들은 이러한 술의 존재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숙성의 개념은 외국의 위스키, 코냑, 그리고 와인 정도에나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의 술은 저렴하고, 외국의 술만 고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술 시장은 대량으로 소비하는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다. 적게 마시더라도 맛을 즐기는 문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다양한 한국의 숙성 전통주를 찾아본다면 어떨까? 위스키, 와인과 달리 이 땅의 기후와 토양을 품은 술이 어쩌면 우리 입맛에 딱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