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소시지가 독일에서 발달한 이유는?
전쟁이 보급시킨 작물 감자 이야기
지난주, 식품업계의 핫이슈는 바로 감자였다. 그것도 상품성 적은 못난이 감자. 백종원 씨가 방송을 통해 판매가 어려운 못난이 감자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알렸고, 그것을 이마트에서 판매, 30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완판이 되었다. 방송과 기업의 좋은 콜라보를 보인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감자는 언제 생겼고,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감자의 시작은 남미의 중앙 안데스 고원지대라고 불린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남미를 정복하면서 16세기경부터 유럽으로 유입이 된다. 하지만 성경에 없는 작물이라는 이미지와, 싹이 나면 독성이 생기는 이유로 감자는 유럽인이 꺼려했던 작물 중 하나였다.
전쟁이 일어나도 살아남은 작물 감자
하지만 감자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먹거리였다. 땅 밑에서 자라는 만큼 혹한의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고, 무엇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살아남았다. 밀, 보리밭은 모두 적에 의해 태워지지만, 땅속의 감자만큼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유럽 최대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1618~1648년)은 감자의 유럽보급에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한다.
소시지와 햄 발전은 감자 덕분?
그리고 그 30년 전쟁의 배경지는 지금의 독일 지역. 당시 독일의 유명 곡창지대 및 포도 산지는 다 불타버린다. 하지만 감자는 살아남는다. 그래서 땅이 황폐해졌을 때 재배하는 작물 구황작물(救荒作物)의 대표 주자로 감자가 대두된 것이다. 다만, 이때까지 감자는 주로 돼지사료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감자를 많이 키운 독일에서 햄과 소시지가 발달할 수 있었다.
황폐화된 땅속에는 감자, 땅 위에는 돼지
돼지는 황폐화된 곳에서 잘 크는 가축이었다. 잡식성이었고, 소의 생육기간이 2년이라면 돼지는 6개월 내외면 성체로 성장했다. 소는 출산 시 1마리 정도 낳지만 돼지는 10마리 전후로 낳는다. 전쟁으로 바람 잦을날 없던 독일은 효율좋은 돼지를 가축으로 선택했다. 다만 감자가 없던 시절에는 돼지는 아사로 인해 죽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역시 보릿고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저장성 좋은 감자가 해결해 주면서 돼지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소금을 넣어 소시지로 만들어 전투 식량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소시지의 어원에는 소금(Salt)이 들어가고, 이 오래가는 소시지를 가진 군대가 강한 군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소시지의 발달은 감자가 있어서였고, 결과적으로 군량미까지 든든하게 하면서 부국강병의 틀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감자 먹는 퍼포먼스 1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감자를 가장 많이 확산시킨 것은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였다. 계몽군주로 유명한 그는 강제로 감자재배를 농민에게 강요했고, 덕분에 기아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감자는 사료가 주된 사용처였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2세는 늘 감자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자 섭취를 독려했다. 마치 현대 정치가의 퍼포먼스적인 모습 그대로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전투를 벌이면 감자밭부터 다 망가트리곤 했다. 이러한 전쟁이 바로 1778년의 바이에른 계승 전쟁. 전투가 끝나면 감자밭부터 해치웠다. 얼마나 해치웠는지, 이 전쟁의 다른 이름은 '감자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감자 보드카의 탄생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진군에 의해 동유럽, 러시아까지 감자가 보급이 되었다. 이때 북유럽을 거쳐 동유럽에서 시작한 술이 바로 감자로 만든 보드카다. 보드카는 호밀, 보리, 밀 등으로 만드는 술이었지만, 이제는 비교적 저렴하게 감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즉, 감자는 전쟁에 의해 보급되고, 작물로 자리 잡고, 술로도 발전했다.
한국에는 1824년 경, 산삼을 찾기 위해 숨어 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의 식량으로 몰래 경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20년대, 강원도 회양군에서는 독일인 매그린이 난곡이라는 감자 품종을 개발하였고, 자기 땅을 잃어버린 화전민이 많이 모인 강원도는 감자재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본격적인 감자 주산지로 떠오르게 된다.
최근에는 이 강원도 감자를 활용해서 만드는 술이 청와대 선물로 선정되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의 이 술의 이름은 '평창 감자술'. 청주 정도의 알코올 함유량을 가진 발효주이다. 감자 술의 제조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찐 감자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멥쌀을 넣어 보름을 숙성시키면 된다. 즉, 감자와 쌀이 함께 들어간 술이라고 보면 된다.
감자만 가지고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감자가 수분이 많고 당도가 낮기 때문이다. 당도가 낮으면 높은 도수의 술을 얻기 어렵다. 당도는 알코올 도수와 비례하기 때문이다(당도 X 0.58= 알코올 도수). 전체적인 맛은 감자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촉촉한 맛이 살아있다는 평이다. 여기에 감자전과 같이 즐기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궁합이다.
최근에 강원도에서는 감자 이외에 다양한 술이 나오고 있다. 곤드레로 만든 곤드레만드레 막걸리, 메밀로 만든 메밀소주, 방풍을 넣은 갯방풍 막걸리, 단호박을 넣은 '만강에 비친 달' 등이 대표적이다. 알고 보면 세상의 모든 작물은 술이 될 수 있다. 술 빚기에 효율이 좋았던 것들이 포도, 쌀, 보리 밀이었던 것뿐. 이번 방송을 계기로 소외되었던 우리 농산물이 더욱 많은 소비자에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우리 농산물로 빚는 좋은 술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농산물로 빚는 술은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좋은 매개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