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암환자가 되었다
오전 8시30분,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종로 3가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혜화행 마을버스를 탔다.
중형급 버스라서 일반버스에 비해 좌석이 적은 편이다.
운 좋게도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려는 순간 노부부가 버스에 탔다.
입원을 위한 캐리어가 한 손에 들려있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중심을 잡기 힘들게 뻔히 보여 얼른 자리를 양보했다.
평소와 같은 나 다운 행동이었지만, 작은 선행이 이번에는 나에게도 복을 가져오기를 바랐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센터 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아, 이제 나 암 환자구나!' 하고 진짜 암환자가 되었다.
초진은 간단히 끝날 것 같아서 혼자 왔는데 이미 일주일 동안 흘릴 눈물을 다 흘려서인지 담담했다.
진료실에서 짧은 두 마디가 오갔고, 더 이상 나도 질문하지 않았다.
열심히 치료후기를 검색하였고, 치료 과정이 예상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없었다.
진료를 보고 수술 날짜를 잡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수술 이후 암이 몇 기인 지 진단받고 치료 계획이 세워지면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나는 수술 전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이다.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손에 잡히지 않았던 책을 다시 펼칠 것이다. 새로 산 다이어리에 스케줄과 한 해의 다짐도 기록할 것이다.
매해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를 찾아서 보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잊지 말아야겠다.
그동안 하루 두 끼로 대충 해결하던 식사를 삼시 세끼로 늘리고, 잠을 푹 자고, 스트레칭과 산책도 할 것이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수시로 밀려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터득했다.
평온한 일상을 위해 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