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과 소문은 집보다 오래 남는다
삼촌은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된 집이었다. 마당에는 관리되지 않은 잡초와 수석壽石이 울창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마치 노인의 무릎에서 나는 소리처럼. 우리는 조용한 숨처럼 지하실 열쇠를 돌렸다. 그것은 우리들 사이에 무성한 소문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지하실 계단은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고 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을 나눠 들고 천천히 마지막까지 내려갔다. 작게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삼촌은 말수가 적었다. 용달차를 끌고 전국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삼촌이 차에 시체를 싣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게 4월인가 5월인가. 아무튼 지금은 집집마다 추수할 적이 되었다.
지하실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젖병과 전화기, 군화와 먼지 쌓인 장롱.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긴장과 공포는 쉽게 증발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아이들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구석에는 냉장고 하나가 눕혀있었고. 놀랍게도 전기가 꽂혀있었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냉동실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하얗게 얼은 머리가 수석壽石처럼 놓여있었다. 누가 볼까, 얼른 문을 닫았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가다가 멈췄다. 마치 내 머리도 냉동실 안에 두고 온 것처럼. 계단 위에는 삼촌이 오래된 집처럼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비 오는 날, 빨간 마스크가 무서웠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동네마다 괴담의 버전이 달랐는데 우리 동네는 비 오는 날, 빨간 마스크가 나타난다는 설정이었다. 우산을 쓴 여자가 빨간 마스크를 벗으며 찢어진 입으로 ‘나 예뻐?’라고 묻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무서워서 비 오는 날에는 밖에 잘 나다니지 않았다. 철이 들고 난 뒤 그 괴담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괜히 허탈하기도 했었다.
소문과 괴담을 믿는 사람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흥미를 끄는 소재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은 단순히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말에는 힘이 있고 다수에게 전파되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먹듯 일부러 자신을 공포에 밀어 넣는다. 인간에게 자기 파괴란 결국 쾌락이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인의 안락을 포기시키는 일도 흔하다. 소문과 괴담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그 흥미는 배가 된다. 바로 옆에 사람의 이혼, 불륜, 범죄, 채무 등이라면 안주도 필요 없이 취하곤 하는 게 사람이다.
소문과 괴담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 앞에 말했듯이 말에는 힘이 있고 어느 때는 총, 칼보다 폭력적이다. 그것이 가족에 관한, 집 안에서의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감춰야 할 비밀이 된다. 왜냐하면 한 집안에 사는 가족의 소문은 곧 내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조용히 냉장고 문을 닫아주는 수밖에 없다.
밤 12시만 되면 운동장에서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동상이 싸운다는 괴담처럼 영 말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끈질기게 실재의 공포스러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동안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이 된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쾅- 하고
지하실 문이 닫히고
또 다른 소문이
또 다른 이야기로
또 다른 기억처럼
생겨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