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이별, 사랑은 사랑
너른 바다였다. 아니 그것은 바닥인 줄도 몰랐다. 파도도 없어서 평평한 바닥. 언덕 위에 선 소년은 그곳으로 누군가 가로질러 와주었으면 했다. 썰물도 밀물도 없어서 밀지도 당기지도 않는 바다의 정가운데를 꼿꼿한 걸음으로 걸어와 주었으면 했다.
바다를 지나 섬의 좁다란 포구를 지나 얼마 전 포장한 경사면을 지나 언덕 위에 소년에게 와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소년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섬을 가로질러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에도 가고 먼 나라의 항구에도 가고 에펠탑도 구경하고 이 섬으로 바다로 돌아와 포구를 지나 경사면을 지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소년의 손을 잡고 다시 섬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면 소년은 둘이 되고 다섯이 되고 몇 백이고 몇 천이고 세상 언덕 위에 선 소년들의 손을 잡고 육지와 항구와 에펠탑을 구경해서 외로울 일도
외
로
밤바다에 벼락이 치고 바람이 불고 밑에 집 여자애가 열이 올라 며칠을 아팠는데 신병이 들었다고 섬에 사는 보살님이 말해주고 여자애 엄마는 밤이 새도록 울었다. 굿을 하고 돼지를 잡고 여자애는 이제 아프지 않은지 흰 얼굴로 소년을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이 소년은 퍽 아찔했다. 벼락이 불고 바람이 치는 것 같았다. 귀 바로 옆에서 꽹과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병을 오래 앓아서인지 여자애는 똑바로 걷지 못하고 외로 걸었다.
울
일
밤에도 소년은 언덕에 올라가 바다를 보다가 여자애 집을 보다가 다시 바다를 보다가 그런데 그 바다가 하늘인지 바다인지 하늘과 바다보다 어두운 수평선을 찾다가 여자애 집에서 또 곡소리가 들리고 그 박자에 맞춰 쏙독새가 쏙-독, 쏙-독. 좁다란 포구 같은 문이 열리고 여자애가 마당에 쭈그리고 앉았다. 마치 돌멩이처럼 생긴 울 일을 찾는 것처럼.
며칠이 지나고 육지에서 무당이 왔다. 용한 무당이라고 했다. 여자애를 데리러 온 거라고 사람들도 쏙-독 쏙-독 잘만 지껄였다. 너풀거리는 옷을 입은 무당이 여자애 손을 잡았다. 그 너풀거리는 옷이 희게 부서지는 파도 같아서 여자애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빨려들 것 같았다.
소년은 언덕 위에서 무당과 여자애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그때 저쪽 바다에서 여러 명의 소년들이 손을 잡고 정말 바다 위를 달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재빨리 언덕 밑으로 날 듯이 뛰어 내려갔다. 이제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도 가고 항구도 가고 에펠탑도 구경하고 여자애의 손을 낚아챈 소년이 바다로 불쑥 뛰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어- 하고 쳐다볼 뿐, 감히 따라가 보지 못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남는다
‘외로 지나, 바로 지나’라는 말을 배웠다. 뜻이 짐을 오른쪽으로 드나 왼쪽으로 드나 짐은 짐,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란다.
만남에는 늘 이별이 동반한다. 그것은 죽음과 동의어다. 때가 다를 뿐 누구나 죽고 이별한다. 그 시기를 늦추고자 하는 마음은 생명체라면 모두 동일하다. 저 평평한 바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희망일까, 욕심일까. 하긴, 희망이나 욕심이나 거기서 거기. 그렇다면 그 희망이고 욕심인 것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가는 걸까. 9월이다. 여름이 가지도 않고 비가 파도 소리처럼 철썩- 온다.
여름도 떠나기 싫을까.
죽음이 싫은 건 이별하기 때문이다. 이별하지 않는 죽음은 싫지 않다. 혼이 되어 만날 수 있다면, 죽음은 슬픔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기억에 살아있다면 그 죽음 또한 완전한 슬픔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외로울 일은 된다.
바로 걷지 못하고 외로 걸을 일도
주저앉고 울 일도 된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죽음은 다가온다. 죽지 않는 인간도, 이별하지 않는 인간도 없다.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과 이별을 피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날 듯이 뛰지 않을 인간도 없다.
그 뛰어듦 속에 삶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지나 외로 지나. 헤어짐이 당연하다면
당신이 내 사랑인 것도 그러하다.
운다- 새소리인지 빗소리인지
하루 종일 뭐가 아쉽다고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