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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Apr 19. 2023

그 시절 독술 오 자매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대학 시절 처음 만난 친구들이었다. 다섯 명이 어울려 다녔는데, 늘 뭉쳐 다니는 우리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우리를 독술 오 자매라고 불렀다.


우리 오 자매 중 한 명은 과 대표였는데, 우리가 약속이 있어 그날은 안 된다고 하면 개강 파티, 종강 파티의 날짜가 바뀌기도 했다. 그냥 우리 없이 해도 된다고 해도 우리 다섯 명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던 것은 아마도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가 다들 즐거웠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시청 거리로 나가 5분마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 안녕 안녕을 하며 다음 술자리를 만들고, 다시 약속하며 내내 즐거웠다. 멕시칸 샐러드, 4천 원짜리 아무거나 안주 하나에 생맥주 피처 잔을 하나씩 들고 원샷을 외치던 날들. 보성시장에서 순대와 머리 고기, 순대국밥에 낮술을 하고 비디오방에 가서 몇 개씩 연달아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웃어대던 날들.     


한 달에 한두 번씩 강의가 일찍 끝난 금요일이면 함덕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마을회관 같은 민박집을 빌려 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 놀았다. 공중전화 앞에 줄줄이 서서 "엄마, 오늘 우리 MT야. 그래서 내일 들어가"라고 전화를 했다.


커다랗고 기다란 이상한 방에서 한쪽에서는 훌라를 치고, 한쪽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기타를 치며 부르고, 한쪽에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술자리가 계속됐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면 친구들은 하나둘씩 잠이 들었고, 잠들지 못하는 몇몇 친구들은 함덕 바닷가로 나가 떼로 합창을 해댔다. 


무언가를 발산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열기가 우리 안에 가득했다.     


다음날 느릿느릿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커다란 들통에 라면을 스무 개씩 삶아 함께 나눠 먹었던 기억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사실 난 그 라면을 맛있게 삼킬 수 없었다. 국물에서 비릿한 비누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빨래를 삶았던 들통을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것 같다. 친구들은 술이 덜 깼는지 맛있게도 먹었더랬다.     


기어이 술을 마시겠다고 강의를 접고, 안개 쌓인 산천단 뒤 상점에 가서 할머니에게 실반지를 맡기고 라면에 소주를 마시던 우리. 150원짜리 자판기 음료수에 새우깡 하나로도 술 한잔 기울이며, 다가올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우리.


어디에선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 살고 있겠지?

문득 그 시절 독술 오 자매의 행방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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