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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May 24. 2023

트롤리 딜레마

어떤 선택을 해야 마음이 편해질까?


       

아이가 학교에서 트롤리 딜레마에 관한 내용을 배운 것으로 생각했다.     


- 엄마, 내가 질문할 게 하나 있는데, 좀 길거든? 지금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덜컥 겁부터 났다. 전날 아이는 불편한 관계들 때문에 수련회에 가지 않겠다고 내게 말을 했고, 학교에는 거짓으로 나의 동의서와 상관없는 내용을 기술해 제출했다. 학교 선생님이 체험학습을 가려면, 신청서를 내야 한다는 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관계, 학교 내에서 적응하는 문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 가정에서의 지도, 기댈 수 있는 이와의 유대 관계 등이 아이의 지금 혹은 미래의 삶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꼼꼼히 살펴주지 못했다.


애매한 포지션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의 현재 모습은 예전의 나와 닮았다. 

나 또한 늘 두루두루 친하고, 어설픈 관계들을 붙들고 있었고 진정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불안 속에서 나를 키워왔다.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겉으로 드러난 그럴듯한 껍데기 속에 나의 속은 썩어 있었다. 

곪아가는 속을 보여줄 수 없어 누구와도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 과정의 길에 아직도 흔들리며 서 있다.     


아이는 친구들의 그룹 안에 속하기도 싫고, 속하고 싶기도 한 양가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봐 두려운 상태에 위태롭게 서 있다 보니 차라리 그 상황을 직면하지 않고 피하고 싶었나 보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방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말로 수련회에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해왔고, 나는 앞으로도 싫은 상황을 계속 피하기만 할 거냐, 학교는 싫은 것도 함께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학교의 행사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선생님과 상담을 한 뒤 아이는 수련회에 가겠다는 말로 자신의 의지를 꺾는 척했지만, 나는 안다. 

이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송곳이 자라나고 있는지 말이다.      


트롤리 딜레마는 아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에둘러 내게 질문한 것으로 보인다.     


- 엄마, 만약에 기차선로에 한쪽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 혼자 있고, 한쪽에는 잘 모르는 사람 다섯 명이 있어. 기차가 막 달려오고 있어. 내가 선로를 바꿀 수 있는 레버 앞에 서 있다고 하자. 내가 바꾸는 방향으로 기차는 갈 거야. 어느 쪽으로 선로를 조정해야 할까?


- 트롤리 딜레마?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 엄마도 아네. 그건 다른 질문도 있어. 내가 웹소설에서 봤는데, 사실 내가 잡지식이 좀 많아 ㅎㅎ 기차 위에 다른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떨어뜨리면 혼자 서 있는 사람도, 나랑 상관없는 다섯 명도 다 살 수 있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관계가 소중하냐, 공동체의 생명이 소중하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 기차 위의 그 사람을 떨어뜨리느니 엄마는 내가 떨어질 것 같은데?


- 오, 그건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네.     


아이와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지만, 나는 아이에게 한 대답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다시 걱정됐다. 

소멸하고픈 나의 욕망을 들킨 것만 같아서, 자신들을 놔두고 어찌 죽을 생각을 하나 원망할까 싶어서.     


최근 김현주 주연의 트롤리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어느 곳에나 지뢰처럼 놓여 있는 곤란한 상황들.


직면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모두가 함께 살길을 찾아볼 것인가.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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