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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Sep 01. 2024

뜨거운 빙수




 한 달이 지났다. 


 7월 중순 본격적인 더위에 미희와 정태의 주말 데이트에 빙수 먹기는 필수가 되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빙수를 종류별로 먹기도 했고, 자주 가는 카페에 여름이면 시즌메뉴라며 흑임자니, 녹차니 하는 다양한 색의 눈꽃빙수를 먹었고 망고, 딸기, 멜론 등 과일을 잔뜩 얹어 나온 과일빙수까지 섭렵했다. 밥그릇과 국그릇 중간 사이즈에 눈꽃빙수라며 우유얼음 잔뜩 갈아놓고 토핑 요만큼만 얹어 만원 넘게 비싸게 파는 빙수시장에서 단돈 4천 원에 파는 빙수 집을 정태가 발견했다.   


 각종 과일에 팥 얹고 아이스크림도 한 스쿱 올려놓고 그것도 모자랄까 봐 말하지 않아도 종이컵에 추가 팥도 따로 주는 빙수집! 00 백화점 9층 푸트코트에 있는데 여름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싸고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걸 자주 검색하는 정태가 인터넷을 통해 알아냈다. 주말을 이용해 자주 갔는데 몇 시에 가도 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빙수집이다. 같이 파는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와플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 2인 빙수 하나와 아이스크림 와플 하나를 주문하고 정태는 사장님에게 오천 원을 내밀며 장사하고 남는 것도 없으시겠다며 너무 맛있다고 잘 먹겠다며 고마운 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정태는 빙수와 와플을 받아 들고 미희가 미리 맡아놓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이스크림 와플을 반으로 나눠서 먼저 먹고 빙수를 섞어서 먹을 차례다. 잘 쌓아 올린 빙수 토핑들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얼음과 잘 섞이게 하는 건 정태 담당이다. 미희도 집중해서 잘 지켜보다가 혹시나 떨어질 만한 토핑들을 가운데 쪽으로 넣어주며 도왔다. 잘 섞인 빙수를 보며 두 사람은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기대거나 몸의 긴장을 풀고 한 입 두 입 먹으며 한여름의 빙수를 즐긴다. 

  너무 더운데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빙수를 먹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며 기절하는 흉내를 내는 정태와 빙수가 너무 차가워 이가 시리다며 미희는 숟가락 위 빙수를 뜨거운 국물 먹기 전처럼 후후 불며 먹는 시늉을 한다. 한참 빙수를 먹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진 미희 핸드폰에 문자 알람이 띠링 울렸다. 발신인은 ‘선희언니’였다. 확인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미희는 빙수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물고 잠금 화면을 풀고 문자를 확인했다. 


 ‘애들이 미희이모 보고 싶데.. 깜깜한 밤에 가기로 했는데.. 왜 안 왔냐고. 물감놀이랑 색칠놀이도 못했다고 아직도 이야기해.. 시간 날 때 놀러 와. 커피도 마시자, 내가 살개.’


 환하게 웃던 미희의 얼굴은 문자를 보자마자 무표정이 되었고 속 안이 갑자기 더워졌다. 숨이 안 쉬어져서 한 번 두 번 큰 숨을 힘겹게 쉬다가 입 밖으로 결국 알 수 없는 느닷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먼저 연락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미희였다. 말이 심했다고, 언니 삶인데 내가 선을 넘은 것 같다고, 내가 빌려준 돈도 아닌데 오천만 원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었다고. 선희는 미희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돈을 매달 빌리고 있기는 하지만 떼어먹거나 안 갚은 적이 없다. 미희 기준으로 선희 삶이 잘못됐다 여길 뿐 선희는 미희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사과는 미희가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선희가 손을 먼저 내밀고 있어서 미안해서, 고마워서, 속상해서 울었다. 미희의 맥락 없는 울음에 정태는 놀랐다가 당황했다가 입안에 있는 빙수는 다 삼키고 울라고 했다가 울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해보라고도 했다. 


 “우리 언니도 좀 잘 살면 안 돼?!! 응?!! 저 다 쓰러져가는 좁아터진 빌라 말고 폐차 직전인 자동차 헐값에 사서 한 달에 한번 고쳐서 쓰는 거 말고!!! 어.. 어.. 엘리베이터도 있는 30평 넓은 평수 아파트에 가족차라는 스타렉스 뭐 이런 거 타고 다니면 안 되냐고!!! 좀 잘 살면 안 되냐고요!!!” 

 미희는 입안에 있는 빙수를 오물오물 씹다가도 말했고 꿀꺽꿀꺽 삼키다가도 말했다. 그날 카페에서 선희가 벌게진 눈을 옷소매로 슥슥 닦으며 아이처럼 울었던 것처럼 미희도 벌게진 눈으로 딱 그렇게 북받쳐오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아이처럼 정태 앞에서 울었다. 

“아프지도 말고 몸도 건강하고!!! 입고 싶은 예쁜 옷도 입으면서어어어!!” 


 말을 다하곤 한 손에 숟가락을 쥔 채 테이블에 엎드려 남은 울음을 울었다. 선희의 벌게진 눈과 미희의 벌게진 눈이 닮았다. 선희도 그날 카페에서 미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도 잘 살고 싶다, 나도 좀 잘 살고 싶다’ 고.  미희의 새하얀 얼굴이 빨개지도록, 더워지도록. 그 추운 빙수 집에서 그 차가운 빙수를 먹으며 미희는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미희는 누구보다 선희가 행복하길 바랐다. 돈이 필요하다면 빌려주었고 조카들 옷이나 신발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웃렛을 데리고 가서 함께 쇼핑했다. 밥이나 커피를 사는 것도 미희였고 언니도 여자인데 입고 싶은 옷이나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며 매년 선희의 생일도 챙겼다. 조카들 생일에는 선희 계좌로 돈을 보내며 케이크를 사거나 외식할 때 쓰라며 마음을 계속 쏟았다. 그동안 선희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며 마음을 쓴 것이 헛수고라고 느껴질 때, 이를테면 핸드폰과 태블릿과 워치, 아이들 게임기, 고가의 캠핑장비 같이 필수품 보다 사치품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에 소비를 하고는 카드 값이 많이 나와 여기저기 돈을 빌릴 때. 

 미희도 언니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하며 여러 차례 넘어가다가도 어느 때는 참지 못하고 선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퍼붓고 만다. 한 달 전 그 카페에서처럼. 


 아픈 손가락,  


 선희는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다. 엄마에게도 진희와 미희, 영희, 가족 모두에게 그랬다. 우리 선희, 착한 선희. 그렇게 온 가족이 신경을 쓰다가도 선희의 삶이 우선순위 없는 삶을 살 때 엄마는 선희를 보고 미련하다느니, 답답하다느니, 바보냐느니 온갖 말을 퍼붓다가도 제발 좀 잘 살라고, 좀 잘 살면 안 되느냐고 울면서 부탁 같은 걸 하기도 했다. 선희는 엄마의 울음에 당황했고 잘못했다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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