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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Sep 08. 2024

서울 유학

 


1975년, 


 전라도 출신 영애는 스물한 살에 예천 우체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정섭은 근처 예천 농협에서는 근무했다. 직원들이 자주 가는 짜장면집이 있었는데 점심시간마다 두 사람은 자주 마주쳤다. 정섭은 영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경상도 남자 특유의 말수가 없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이렇다 할 표현을 못하고 있었다. 동료의 도움으로 정섭과 영애는 한 두 마디 말을 오갔고 정태는 영애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가 좋아한다니 영애는 들뜨며 좋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예쁘지도 않은데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내가 뭐가 좋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며 자신을 향한 정섭의 애정을 종종 과시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고 퇴근 후 예천 동네를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짜장면 집도 가고 다방도 가고 주말에는 냇가에 가서 물놀이도 즐겼다.  회사 동료인 석현과 옥주, 넷이 만나 커플데이트를 즐기며 1박 2일, 2박 3일의 여행도 같이 다녔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정섭은 군대에 가게 되었다. 영애는 정섭의 면회를 자주 갔고 휴가를 나온 정섭도 제일 먼저 영애를 찾았다. 두 사람은 3년의 긴 군복무를 함께 했다. 


 제대 후 스물다섯이 된 영애와 정섭은 마주 앉았다. 영애는 정섭과 관계를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차이, 8남매 장남에 장손, 가난한 집안에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정섭의 상황이 그제야 보였다. 영애는 불쑥 이별을 통보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갔다. 영애의 이별 통보가 도리어 정섭 마음에 불을 일으켰고 정섭은 영애를 따라 전라도로 내려갔다. 헤어질 수 없다, 결혼하자고  했다. 


 다음 해 3월, 영애와 정섭은 스물여섯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일 년 만에 진희를 낳았고 3년 뒤에 선희가 태어났다.  1년 뒤 미희가, 또 1년 뒤에는 영희가 태어났다. 장남에 장손이었던 정섭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다. 시부모님과 도련님, 시누이까지 대가족이 살고 있는 시댁에 영애는 딸만 넷을 안겼다.

 전화국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영애는 전화국이 자회사로 새로 출범하게 되면서 근무지가 전화국이 되었다.)으로 출근을 하는 영애 대신 시어머니가 아이 넷을 키웠다. 정섭은 아버지 종윤을 따라 농사일을 했고 소와 닭도 키웠지만 넉넉히 살기에는 부족했다. 그나마 영애가 매달 받는 월급으로 집안의 부족한 가계를 보탰다. 시어머니 모열은 때마다 영애에게 돈이 있냐며 물었고 영애는 모열이 필요하다는 금액만큼 곧장 봉투에 담아 주었고 모열은 그걸로 화투도 치러 다녔고 막걸리도 사다 마셨다. 

 영애네 집은 전라도 해남으로 꽤 넓은 토지도 가지고 있었고 어렸을 때 머슴도 몇 있었다고 했다. 영애가 정섭에게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 영애의 엄마, 이화순 여사는 영애가 못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간다며 못마땅해했지만 가서 보태주며 살면 그것도 복이라며 기꺼이 보내주었다. 엄마의 말처럼 영애는 복되게 살았다. 



*


 진희를 낳았을 때  종윤과 모열은 아들이 아니라 속상하다면서도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것이 아장아장 걷고 종알종알 말을 하는 게 신통하다며 예뻐했다. 종윤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에 빨간색 유아안장을 달고 진희를 태워 시골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녔다. 모열도 진희를 동네잔치나 모임에 꼭 데리고 다녔는데 할머니들 모임에서 막걸리를 한 잔 두 잔 얻어마신 진희는 비틀비틀 취해서 오기도 했다. 

 영애와 정섭도 진희를 애지중지했다. 그 옛날 그 시골에서 공주인형 여러 개와 분홍색 2층 집 세트, 조이스틱으로 조정하면 움직이는 RC카도 몇 대씩 가지고 있었다. 정섭은 진희를 자주 안고 다녔고 영애는 진희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어 주었고 진희가 사고 싶다는 책도 모두 사주었다. 


 진희는 어려서부터 영특했다. 공부하는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았는데도 초등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주변에서 어떤 학원을 다니냐, 무슨 과외를 받느냐 물어볼 정도였다. 영애 입장에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공부를 잘하는 진희가 신기했다. 진희가 알아서 잘하니 선희, 미희, 영희도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했다. 

 선희는 진희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공부도 지능도 평범했던 선희는 늘 진희와 비교당했다. 언니는 잘하는데 너는 이런 것도 못하냐, 언니를 안 닮고 누굴 닮았냐, 할머니와 삼촌, 고모들이 대부분 선희에게 핀잔을 주었고 영애는 자신도 모르게 진희와 비교하며 선희에게 한 마디씩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입 밖으로 나갔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네가 진희 동생이니? 진희처럼 공부도 잘하겠다’는 기대와 달리 선희는 중간도 따라가지 못했다. 뛰어나지 않은 것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선희는 자주 주눅 들었고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게 되기도 했다. 속셈학원을 다녀도 나아지지 않았고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진희와의 차이가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진희가 어느 날 영애에게 '서울로 가자'라고 했다. 서울 이모집을 몇 번 오갔는데 주변이 논밭인 시골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도시의 환경을 보니 스스로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서울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 초등학생인데도  영애는 진희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진희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무렵, 영애는 서울 전화국으로 발령을 받았고. 정섭과 오랜 논의 끝에 딸들을 모두 데리고 서울로 이사하기로 결정을 했다.  영애는 서울로 몇 번 집을 알아보러 오고 가고 하다가 전화국 근처 방 두 칸짜리 집을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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