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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Sep 15. 2024

온 집안이 끙끙 앓았다



 서울로 이사를 가는 날, 


모열은 무거운 몸과 아픈 다리로 나와 그레이스 봉고차 안을 둘러보며 손녀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얼굴을 만지며 인사를 했다. 속바지에서 꺼낸 복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진희 손에 쥐어주기도 했고 서울 가서 밥 많이 먹으라며 두 공기씩 이만큼 고봉으로 먹으라며 손가락 두 개를 꼽으며 손녀들에게 당부도 했다. 

 봉고차에 시동이 걸렸고 그제야 모열은 정섭과 영애를 붙들고 안 가면 안 되느냐고 왜 가느냐고 그냥 여기서 같이 살자고 애들 없이 보고 싶어서 어떻게 사느냐며 정섭을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우리 집 장남인데, 내 아들인데 가긴 어딜 가냐며 소용도 없는 말을 계속했다. 시부랄, 시부랄 것! 성질대로 욕을 해가면서 떠나려는 자식과 손녀들을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었다. 막고 싶은데 막아지지 않자 울음이 나왔다. 입고 있던 치맛단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지켜보던 종윤은 툇마루에 서서 모열에게 그만하고 들어오라고 바쁜 사람 붙들고 뭐 하는 거냐며 소리를 쳤다. 모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애와 정섭을 말렸다. 

  영애는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우느냐며 방학마다 내려올 거라고 시어머니를 달랬다. 할머니가 우니 손녀들도 ‘할매, 할매'하며 따라서 울었다. 봉고차 문이 닫혔고 큰길로 나갈 방향을 잡았다. 모열은 결국 두 다리를 뻗고 바닥에 주저앉아 집과 가족을 몽땅 잃은 사람처럼 땅을 내리치며 울었다. 40년 동안 키운 내 아들, 10년 넘게 내 손으로 키운 내 손녀들인데 한순간에 모조리 뺏긴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



  보증금 800만 원에 월세 8만 원, 방 두 칸짜리 사글세가 영애와 정섭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작은 방을 진희 혼자 쓰는 방으로 정했다. 여섯 식구 옷가지와 진희 책상이 하나 들어가니 꽉 찼고 한 명 누울 공간이 조금 남았다. 큰방은 진희를 뺀 다섯 명이 누워 자는 방이 되었고 낮에는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 되었다.   

 진희는 인근 중학교로 선희, 미희, 영희는 인근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진희는 전학 가자마자 치른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이후에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진희를 눈여겨본 주변 학원은 물론 대치동 유명 학원에서도 학원비를 받지 않을 테니 등록만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도 들어왔다. 학원으로 오가는 것도 불편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걸 더 선호하는 진희는 여러 학원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던 선희는 당시 체육 선생님에게 눈에 띄었고 체육 선생님은 곧 영애를 불러 이 정도 신체조건이면 농구를 시키면 좋겠다며 설득했다. 예상치 못했지만 영애는 선희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라면 뭐든 시켜볼 생각이었다. 어린 선희 생각에도 공부로 언니를 이기거나 따라잡을 수 없으니 운동이라도 해야 비교당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농구를 해보겠다고 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선희는 집과 거리가 있는 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갔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통학을 했다가 곧 기숙사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시작된 강도 높은 훈련에 머리도 남자처럼 짧게 잘라야 했고 한 학년 차이인데도 엄격한 위계, 감독과 코치들의 폭언과 폭력, 갑자기 들어선 운동의 세계에 선희는 어리둥절했다. 매일 울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나약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래도 잘할 수 있는 건 운동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운동 때문이라는 명분도 있다. 그때마다 선희는 이를 악물고 훈련을 받았다. 키도 크고 호리호리 예뻤던 선희의 몸은 팔과 종아리에 알이 불뚝 배겼고 점점 남성스럽게 변해갔다. 


 이후 자연스럽게 농구부가 있는 중학교로 다니게 되었고 농구 시합도 종종 나가게 되었는데 운동계마다 있는 촌지나 줄 서기 등 불합리한 경우가 많았다. 맞벌이로 아이 넷을 키우는 영애와 정섭은 선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선희가 운동에 필요하다는 잠바나 운동화, 회비만 챙기기에도 힘에 부쳤다. 결국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농구를 그만두게 되었고 미희와 영희가 다니던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손 놓은 학교 공부는 당연히 따라갈 수 없었다. 

 학교에 댄스 팀이 있었다. 몸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자신 있었기에 농구에 이어 선희의 두 번째 선택은 댄스였다. 동대문 밀리오레나 두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춤을 추며 댄스팀 활동을 했는데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집보다 가족보다 친구들이 더 편한 시기를 맞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집을 들어가지 않거나 학교를 가지 않은 날이 잦았다. 영애는 친구들을 수소문해 가출한 선희가 있는 곳을 찾아 집으로 데려왔고 이럴 거면 나가서 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고 너네들 두고 나는 도망갈 거라며 엄마 없이 살아보라며 협박 같은 걸 했다가 제발 잘 좀 살자며 울었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나 싶다가도 어느 날은 몇 명의 친구들과 선희가 경찰서에 있다며 연락을 받기도 했다. 영애가 회사일로 가지 못할 때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진희가 경찰서를 찾아가서 선희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선희의 방황의 시기만큼 영애도 방황했다. 영애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방 안 가득 들리던 때도 있었고 때로는 삶이 버거워 도망가고 싶다며 작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울음과 고함이 섞인 소리를 내뱉기도 했었다. 영애의 마음이 진심이기도 했고 진심이 아니기도 했을 테지만 무섭고 힘든 삶의 무게에 감당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주간, 야간 마다하지 않으며 돈을 벌며 고생하는 이유가 다 아이들 때문인데 지금까지 잘 못 키운 건가, 내가 뭘 잘못했을까. 

 온 집안이 끙끙 앓았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시내버스를 운전하며 버티었던 정섭은 소주를 마시는 일이 잦았고 어느 날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취기 가득한 목소리로 떠들다가 가만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을 뚝, 흘리기도 했다. 울음을 삼키고 삼키다 결국엔 흐른 한 방울의 눈물이었다. 그 한 방울은 무거웠고, 반짝였고 ‘탁’ 깨지는 듯 한 소리도 들렸다. 




*


 진희는 어릴 때부터 옷이나 신발도 모두 새것이었고 가지고 싶은 장난감도 원하면 가질 수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학원을 보내 주었다. 부모님의 사랑뿐 아니라 조부모의 사랑도 독차지였고 기숙고등학교 3년 동안의 기숙사비도 모두 지원받았다. 둘째인 선희는 진희만큼은 아니더라도 농구부에서 필요하다고 한 운동복, 운동화, 잠바 등 모두 새것으로 사주었고 댄스부에도 보내며 학창 시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희와 영희는 중, 고등학교 시절 새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교복 물려 입기로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을 보냈고 원하는 학원도 때론 돈이 없어 다니지 못하기도 했다. 미희가 고3이 되었고 원하는 대학에 모두 떨어졌다. 그즈음 진희가 대기업에 입사하였고 영애와 정섭도 한차례 숨통이 트일 때였다. 미희는 재수를 하고 싶다고 했고 영애와 진희는 미희의 재수를 허락했다. 진희가 학원 비를 보탰다. 미희는 1년 재수 끝에 대학에 붙었고 이어 영희도 고3을 졸업하여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즈음 선희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생각이 없다가도 주변 친구들이 지방대나 전문대를 가서 대학생활 하는 것을 보니 부러웠고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구할 때 ‘고졸’이라고 적어낼 때마다 대학 생각이 점점 확고해져 갔다. 선희는 지방에 있는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영애에게 합격증을 보이며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미희와 영희 둘이나 대학에 보내는 데도 입학금과 등록금이 만만치가 않았다. 영애는 동생들이 한꺼번에 대학을 가니 너까지 가게 되면 세 명이나 대학 등록금을 보태는 건 무리가 있다, 몇 년 있다가 가면 어떻겠냐고 선희를 설득했다. 선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러겠다고 했다. 


 진희는 대기업에 입사해 회사생활을 했고 미희와 영희는 대학생활을 즐겼다. 선희는 공장에 취직한 친구를 따라 공단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고된 일을 하고 오면 맥주에 치킨, 소주에 야채곱창, 낙지볶음 등의 야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고 술에 취해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 작은 원룸에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렇게 3년 4년 일을 하다 보니 대학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선희의 대학 이야기도 집안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선희는 농구를 그만둔 후유증으로 고등학교 때 체중이 많이 불어나게 되었고 이십 대를 야식으로 버티다 보니 뚱뚱한 체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살이 쪄가는 선희를 볼 때마다 영애는 ‘술을 그만 마셔라’, ‘다이어트 좀 해라’ 잔소리를 했지만 선희 입장에서 시끄럽고 지겨운 잔소리에 불과했고 정작 선희 삶을 바꾸지는 못했다. 

 미희와 영희는 방학을 이용해 선희가 사는 원룸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선희는 동생들이 온다는 소식에 좁은 부엌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밥을 차려 냈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모두 꺼내 상에 펼쳐 놓았다. 학교 다니면 돈 쓸 일이 많지 않냐며 용돈을 주기도 했고 너네들 온다고 해서 어제 백화점을 다녀왔다고 대학생인데 예쁘게 하고 다니라며 옷과 신발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주간과 야간을 오가며 힘들 게 번 돈이다. 정작 본인은 백화점보다 시장을 자주 갔다.  선희는 미희와 고작 한 살 차이고, 영희와는 두 살 차이다.


 스물여덟, 선희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9살 연상의 회사 팀장이었고 곧 마흔을 바라보는 아저씨였다. 영애는 나이가 많다며 반대했다. 학창 시절 또래 남자친구를 만난 것 외엔 만나는 사람도 없었는데 뜬금없이 마흔 살 아저씨라니 그리고 결혼이라니. 영애는 정섭에게 당신 생각은 어떠냐 물어보아도 정섭은 딱히 말이 없었다. 영애는 결혼해서 출가외인인 진희에게까지 전화했고 같이 만나보러 가자고 했다. 영애와 진희, 선희와 진택이 만났다. 진희는 나이는 많아도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고 결혼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영애는 딸이지만 진희를 많이 의지하고 진희의 판단을 신뢰한다. 선희와 진택은 이듬해 봄 4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고 3년 뒤 첫째 조카 하준이 태어났다. 조카를 보러 선희네 집을 자주 찾았던 미희는 선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형부하고 결혼이 하고 싶어 졌냐고, 나이도 많은데 형부의 어떤 점이 마음이 들었냐고. 선희의 대답은 의외였고 간단했다. 공장일 끝나고 고깃집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 사람이 형부였다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들어줬다고, 그런 사람이 살면서 나는 평생 처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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