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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Oct 13. 2024

작은 집의 진가



 그동안 모은 돈과 양가에서 보태준 금액을 합쳐 미희가 살았던 자취방 근처 빌라에 전세를 구했다.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 겸 부엌, 작은 베란다가 있는 15평 빌라를 계약했다. 빈지하 1층과 지상 1,2, 층으로 된 3층 빌라인데 맨 위 201호가 정태와 미희의 신혼집이다.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의 빌라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첫 번째로 지은 빌라로 집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첫째 아들도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고 바로 전에 살던 사람도 8년을 살다가 갔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미희와 정태도 보자마자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작은 집이었지만 창문이 많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빛도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했다. 알차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책상 두 개, 옷장 두 개, 침대 두 개. 영희가 이사를 도우면서 신혼집인지 기숙사인지 모르겠다는 평을 했지만 뭐든지 둘이서 같이 해야 한다는 신혼보다 개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느낌이어서 두 사람은 오히려 만족했다. 작은 방을 침실로 결정했고 큰방에 3인용 소파와 개인 책상을 두어 서재 겸 거실로 사용했다. 부엌에 2인용 식탁으로 둘이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때 사용했고 큰 방에 접이식 식탁을 들여 손님을 초대하거나 모임이 있을 때 펼쳐 사용했다. 정태와 미희가 독서를 하거나 간단한 와인과 간식을 곁들일 때도 사용했다. 메인스탠드 조명과 책상 스탠드, 무드 등을 적절히 사용하며 큰 방을 때로는 서재, 와인바, 손님방 등으로 활용했다. 작은 집인데도 불편하지 않고 둘이 살기에 정말 좋다며 한 해 두 해 보내며 작은 집의 진가를 알아갔다.


 연애 때부터 미희의 주말은 친구들과 만남으로 일정이 차 있다. 그에 반해 정태는 미희와 보낼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주말 데이트를 못하는 정태의 불만과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못 만난다는 미희의 불만이 자주 충돌했고 둘은 이 문제로 헤어지기도 했다. 다툼과 이별의 여파로 감정소모가 많았고 일상에까지 영향을 끼쳐 두 사람은 점점 지쳐갔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자꾸만 엇갈리는 관계에 소리를 지르며 답답해하는 정태와 싸울 기운이나 다시 시작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미희.

 마음이나 몸을 가눌 수 조차 없는 폭풍이 두 사람을 휘몰아치고 가고 나면 겨우, 아주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갔다. 싸우고 화해하기를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끝을 알 수 없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긴 연애시기동안 행복하고 기쁜 날들이 많았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많았다. 인생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미희와 달리 정태는 인생이 버겁고 힘들고 무섭다고 했다.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고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차마 죽지 못하는 건 다시 태어나서 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생을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윤회를 생각하며 다시는 시작하고 싶지 않은 게 인생이라며 이를 악물고 이 생을 버티고 있는 거라고 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결혼은 더 좋은 앞날을 기대하고 행복한 삶을 바라며 하는 것인데 미희는 과연 정태와 결혼을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정태에게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의 모습을 바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연애했던 기간이나 신혼의 기간 동안 정태의 상태에 따라 불안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미희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않은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기도 했다. 정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이러다 나도 죽는 건 아닌지. 어느 날은 불안감이 높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고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평생 우울이나 불안,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거나 마주한 적 없는 미희였다. 그러면서도 왜 내가 이런 불안을 겪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은 했지만, 한 번도 정태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정태의 폭력적인 성향이나 깊은 우울은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했고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정태가 불안한 마음과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그의 가족들은 이해하고 사과하기보다 더 극단으로 대응했다. 칼을 꺼내 다 같이 죽자고도 했고 불을 지른다며 더 극단의 감정과 행동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었고 서로 얼굴을 보고 마주하는 것도 고통스러워했다.


 정태는 상황에 맞는 표정과 말투나 제스처, 여러 개의 가면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미희에게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듯 과거의 일들을 쏟아져 나왔고 그때의 감정들도 내놓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싫지?’ 물어보며 계속 미희의 반응을 살폈다. 불안해하는 정태를 보며 미희는 도망가기보다 더 끌어안았다. 같이 울었고 때로는 괜찮다고 이제는 안전하다고 아이 달래듯 웃으며 안고 토닥였다. 얼굴을 바라보며 정태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코도 풀어주었다. 정태는 미희의 품에서 안심하며 안도했다. 인생에서 미희만 있으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



 조용하고 한적한 주말 오후, 용건이 있는 듯이 정태가 ‘미희야!’ 부른다. 미희는 ‘어?’라고 반응하는데 뒤이어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보!’ 하고 부른다. 미희가 ‘어?’라고 반응하면 뒤이어 ‘사랑해’라고 한다. 정태의 ‘고마워’는 정말 고맙다는 말이었고 ‘사랑해’라는 말도 정말로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미희는 울컥하기도 했고 코끝이 찡해오거나 눈물이 고여 몰래 눈물을 닦기도 했다.   


 결혼 후, 미희가 생활비를 벌었고 정태는 재활을 하면 집안일을 했다. 미희는 결혼 전부터 하던 일이어서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영희와 같이 살 때 나눠하던 집안일을 정태가 도맡아 해 주니 더 편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청소를 하고, 영화도 보았다. 주말에 마트에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외식을 하기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인데 정태는 하루하루 행복했다. 어릴 때부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부모의 이혼으로 태어나면서 평범하지 못했고 친척들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가족과 친척의 학대로 자주 불안에 떨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열한 살, 어린 정태는 ‘죽어야겠다.’ 생각했다.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바람이 아니라 결단이 섰던 것이다. 처음으로 자살시도를 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심지어 결혼 몇 년 전 까지도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했었던 정태는 결혼을 하고 살아보니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도 있구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보길 잘했다.’ 말하기도 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 옆에서 너는 어떻게 버틴거냐며 정태는 미희를 안쓰러워했고 미안해했고 고마워했다.  
 
  미희는 엄마 생각이 났다. 딸 넷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왔던 그때, 영애는 전화국으로 출근을 했고 정섭은 버스 운전을 했다. 정섭은 매일 새벽 출근으로 피곤했지만 피곤쯤이야 문제 되지 않았다. 버스 일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1년도 안된 사이에 사고가 3차례나 있었기 때문이다. 큰 사고는 아니어서 대부분 합의로 끝냈지만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불안했고 계속되는 긴장으로  버스 일을 그만두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정섭은 도시의 복잡함과 냉정함에 적응이 힘들었고 또 다른 직장을 알아가기보다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정섭은 서울에 온 지 3년 만에 처와 자식을 두고 내려갔다. 영애가 그러라고 했다.


 영애는 서울에 남아 전화국에서 2교대를 하며 네 딸들을 키웠다. 전화국에서 명예퇴직을 했고 퇴직금으로 기와집을 헐고 2층 양옥집을 짓는데 보탰다. 시골에서 부화장을 운영 중이었던 정섭에게 값이 나가는 비싼 기계도 새것으로 바꿔주었다. 퇴직 이후에도 영애는 서울에서 마을버스 운전을 했고 택시운전을 했다. 막내 영희까지 대학을 가고 나서야 정섭이 있는 시골에서 부화장을 같이 운영했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영애가 야간택시를 할 때였다. 맥주를 마시며 딸들에게 한 이야기가 있는데 미희는 아직도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엄마가 일을 하는 이유 첫째는 아빠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 딸들 때문이다.’ 엄마가 밤낮으로 일하는 이유가 당연히 자식들 때문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첫 번째 이유가 ‘아빠’라는 말에 미희는 의외였고 놀랐다. 미희는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종종 그 문장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의외 거나 놀랍기보다 정섭을 아직도 사랑하는 영애가 사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편만큼이나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포기하지 않는 영애였다. 미희가 용돈이 필요하다고 5만 원을 보내달라는 메시지에 영애는 굶지 말고 먹고 싶으면 사 먹으라며 늘 10만 원을 보내주었다. 할 줄 알면 계속하게 된다며 김치 담그는 법, 각종 요리나 반찬 만들기, 뜨개질하는 법이나 바느질하는 것도 영애는 딸들에게 안 가르쳤다. 나중에 필요하면 엄마가 다 해주겠다고 고생은 나만하면 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딸 넷을 모두 원피스를 입혔고 하얀 스타킹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를 신겼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도 매일 아침마다 빗기고 땋고 묶으며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미희는 영애의 삶을 보고 자랐다. 정태는 미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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