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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Oct 20. 2024

인생은 누구에게나 아쉽다

 


 영희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졸업 후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2년 다녀온 뒤 곧바로 취직을 했다. 50명 규모의 ‘웹디자인 회사’였는데 마케팅 부서에는 영희 포함 차장 1명, 사원은 2명의 작은 규모였다. 마케팅에 대해서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업무에 대해 체계가 없고 주먹구구 식이었다. 6개월만 다니고 이직했다.  


 이후 30명 규모의 ‘마케팅 전문회사’로 이직했고 대학원서 입학을 지원하는 곳으로 대학교 위주 마케팅이 주를 이루었다. 다양한 상품에 대한 마케팅을 하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또 퇴사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3년은 다니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조직개편이 많았고 퇴사와 입사로 직원들이 자주 바뀌었다.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 많아진 업무량과 수원에서 서울로 왕복 4시간의 출퇴근으로 번아웃이 되었다.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 싫다’는 생각뿐 아니라 지나가는 차를 보며 ‘차에 치이고 싶다.’ 회사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입원하겠지?’의 생각을 자주 했다.  


 영희는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를 읽고는 큰 백팩을 사더니 돌연 인도여행을 떠났다. 여자 혼자 인도여행을 가는 건 위험하다는 만류에도 영희는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고 했다. 연고도 없는 호주로 혈혈단신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도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딸기농장과 호텔청소로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을 만큼의 돈을 벌고 죽지 않고 귀국했다. 

 2주 간의 인도여행 중 영희의 페이스북에는 라씨 사진, 카레와 탄두리 치킨을 먹는 사진, 릭샤를 타고 있는 사진, 침대기차 사진, 타지마할과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보트를 탄 사진이 올라왔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며칠 씻지 않은 듯한 냄새가 옷과 가방 곳곳에서 났지만 영희는 이번에도 죽지 않고 무사히 귀국했다. 미희는 영희가 침대에 있는 것을 보고 출근을 했는데 퇴근 후에도 침대에만 있는 영희를 발견했다. 며칠 동안 회사출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영희의 휴가는 그렇게 두 번째 퇴사로 이어졌다. 


 한 달 정도 쉬고 있는데 웹디자인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보람에게 연락이 왔다. 사촌오빠가 마케팅회사를 창업하고 사람을 구하고 있다며 영희에게 취업을 제안을 했다. 매달 나가는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기에 영희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주지를 서울로 옮겨 출근 시간도 30분으로 단축되어 이전보다 낫겠지 하며 지금의 세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영희는 세 번째 회사까지 와서야 ‘나는 조직생활이나 회사생활이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명 정도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인데 상사인 과장님과도 맞지 않았고, 사원으로 있는 희진과 나이도 경력도 비슷해 자주 비교되는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희진은 맡은 일을 잘 해냈고 일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 상사에게 웃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편으로 뒤끝이 없었다. 그에 비해 영희는 일을 적정선까지만 했고 힘든 부분이 있어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한참 일이 많을 당시, 회사에서 희진과 영희에게 각각 인턴 한 명씩 붙여 주었는데 희진은 인턴에게 일을 시키고 가르치는 등 디자이너와 인턴을 잘 활용해 한꺼번에 광고 3-4개도 거뜬했고 그에 반해 영희는 인턴에게 일을 시키고 가르치는 게 어려웠다. 기다려줘야 하는데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에 영희가 인턴의 일까지 다 처리해 버리기 일쑤였다. 휴가나 주말에도 노트북을 들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여행을 가서도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일을 했다. 쉴 때도 쉬는 게 아니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게 늘 스트레스였고 상사 눈치에 광고주 눈치에 1차 시안, 2차 시안, 3차 시안 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무에 영희는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자주 들어가 검색했다. 언제까지 기한이 있는 일이 아니라 집에 오면 끝나는 일,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닌 몸을 쓰는 단순 노동인 일들을 찾으며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같이 살았던 미희는 결혼을 했다. 영희는 혼자 남겨졌다. 독립생활이 기쁘기보다 아무도 없는 집이 적막했고 슬픈 음악을 틀어놓고 자주 울었다. 퇴근 후 매일 캔맥주를 사다 마셨고 마른안주나 과자를 씹으며 드라마나 예능을 돌려서 보다가 잠을 자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다. 



*


 선희, 미희가 주말에 영희 집으로 모였다. 일곱 살이었던 하준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어린이 집에 다녔던 하은이는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생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조카들을 보며 영희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며 아쉬워했고 신기해했다. 낮에는 놀이터에서 놀고 저녁에는 집에서 한글공부와 숫자공부를 봐주었다. 영희는 조카들과 놀며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작은 입에서 그렇게도 길고 긴 말들이 나오는 게 신기했고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크고 격양된 목소리로 한껏 반응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달려와서 안겼고 영희가 꼭 안아주었다. 어쩌면 영희도 조카에게 안겼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음 한 곳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늦은 저녁, 미희가 조카들을 씻기고 재웠고 그 사이 영희는 식탁에 상을 차리고 막 도착한 치킨을 받아 들었다. 선희, 미희, 영희 셋이 마주 앉았다. 4캔에 만원인 편의점 맥주를 8캔이나 샀고 후라이드, 간장, 양념이 한 세트인 치킨을 가운데에 놓았다. 오랜만에 언니들과 조카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영희는 말이 많아졌고 몸을 흔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었다. 

 “역시 주말은 치맥이지!! 하.. 살겠다 진짜!”

 “나도 오랜만에 치맥인데 진짜 행복하다. 형부가 소주를 마시니까 보통 고깃집을 가거나 횟집을 더 자주 갔었거든.” 

 “아 진짜? 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가 치맥인데, 난 결혼해서도 절대 포기 안 할 거야! 미희언니는 치맥도 모르고 무슨 재미로 살아?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는데 신기하게 달라. 대부분 다 비슷하게 살던데.”

 “그러고 보니 나도 미희나 진희언니랑 맥주 같이 안 마셔본 것 같아.”

 영희 말에 선희가 보탰다. 

 미희는 사이다를 컵에 따라 마시며 듣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가족모임이 있는 날도 비슷하다. 술을 마시는 그룹과 마시지 않은 그룹, 말을 많이 하는 그룹과 듣고 있는 그룹. 술을 마시고 말이 많은 그룹에 속한 영희와 선희의 쉴 새 없는 대화가 오간다. 안주로 치킨을 들고 한입 베어 문 영희가 말을 이었다. 

 “언니, 희주 알지? 희주, 연주, 문주. 걔네들 세 자매는 다 선생님하고 있지 않아? 또 아빠 친구 딸인데 선희언니랑 동갑인 언니, 이름이 뭐더라?”

 “아빠 친구 누구?”

 “병준이 아저씨인가, 병진이 아저씨? 왜 있으시잖아. 삼 남매인데 첫째가 언니랑 동갑인.”

 “아아! 예지”

 “맞아! 예지언니. 거기는 또 다 공무원 아니야? 예지언니, 연지, 지성이까지!”

 “응 그렇지.”

 아빠 친구들과 비슷한 또래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자라면서 소식도 자연히 듣게 되었다. 석희 아저씨네는 선생님 집안, 병진이 아저씨네는 공무원 집안으로 칭한다. 셋은 한동안 말이 없이 치킨을 먹다가 영희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또 말을 시작했다.   


 “보면 다들 공부시키는 집은 공부 엄청 시키더라. 첫째 잘 시켜놓으면 그다음 둘째 셋째도 비슷하게는 가니까. 우리 집은 근데 너무 제각각인 것 같아. 엄마가 넷 키우느라 바빠서 교육철학이나 이런 게 너무 없었지.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못하고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미희언니랑 나는 학원도 못 다녔잖아. 중3인가? 나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했잖아 학원 보내달라고. 참 남들은 부모가 학원 보내기 바쁘고 자식들은 안 다닌다고 난리인데. 우리 집은 어째 거꾸로 됐어.”

 영희는 옛날이야기만 나오면 조금 흥분을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빨라진다. 네 자매가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첫째가 받는 혜택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둘째, 셋째, 넷째 순서가 되는데 영희는 막내라 그런지 자라면서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서러움을 가끔 이렇게 쏟아냈다.  

 “요즘 회사를 너무 가기 싫으니까. 원망될 때 있다. 희주랑 나랑 시골에서 비슷하게 공부 잘했거든. 초등학교 때 전학 와서 서울이 낯설었고 또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로 안정적이지 못해서 뭔가 계속 불안했어. 나도 시골에서 그대로 자랐으면 선생님이나 공무원 하고 있을 텐데. 엄마가 학원도 보내주고 공부를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어땠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진짜 회사 너무 가기 싫어어어!! 취집 하고 싶다 진짜! 나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는데에에!!” 

 영희는 먹고 있던 치킨을 접시에 툭 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흔들며 어린아이들이 부리는 생떼와 같은 모드로 퇴사에 대한 진심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선희와 미희는 별 동요가 없었고 미희가 그간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특히 입시 준비할 때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들었어. 대학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데 나는 나침반도 없고 지도도 없는 거야. 올라가라니까 가긴 가는데 이 길이 맞나? 아닌가? 계속 불안했고 이 길이 맞는 것 같아서 올라가면 막다른 길인 거야. 다시 왔던 길로 나와서 올라가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느낌이 고등학교 내내 들었어.  주변에 보면 지도, 나침반뿐 아니라 최신식 장비까지 갖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산을 오르는 애들도 있고, 부모님이 앞장서서 지름길로 오르는 애들도 있는 것 같고, 심지어 헬리콥터를 타고 산을 편하게 올라가는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거야.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입시라는 험하고 높은 산에 부모님이 도움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했던 것 같아. 결국 나 재수했잖아.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고 상처였어. 작년까지만 해도 스무 살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눈물 고이고 그랬다. 친한 친구들은 대학생 되어서 엠티에 미팅에 연애도 하는데 나는 재수학원에 박혀서 얼굴은 여드름에 쩌들고 몸은 뚱뚱해지고 가장 빛나고 예쁠 시기라고들 하는데 지금까지 통틀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스무 살이었거든.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우울증도 있었던 것 같아 자주 울었고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두세 시간 앉았다가 집에 가고 그랬다. 자살까지는 아니어도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지 공감되더라. 위험했어 나.” 

 “아 진짜 언니? 나 진짜 몰랐네!!”

 차분한 미희와 달리 영희가 호들갑을 떨었다. 

 “진희언니가 맨날 전교 1등 하고 반장 부반장도 하고 혼자서 너무 잘하니까 우리도 알아서 잘할 줄 알았던 거지. 그래도 엄마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지원해 주셨잖아. 아빠가 시골에 내려가서 사시느라 생활에 빠듯해서 못해 주신거지. 다 해주고 싶은데 못해주는 부모마음은 더 찢어진다, 애 낳고 키워보니까 부모마음 너무 알겠더라.”

 공부이야기나 대학이야기에 가장 말이 많을 것 같은 선희가 오히려 과거 상황을 설명하며 미희와 영희의 마음을 다독였다. 

“내 친구 지영이 연대 나왔잖아. 걔가 그러더라, 공부는 인생에 고속도로를 쫙 깔아 놓는 거라고. 일단 깔아 놔야지 다른 데를 가고 싶어도 얼마든지 가볼 수 있는 거라고. 진짜 맞는 말이지!..... 자매나 형제가 그래도 비슷한 세모 모양, 긴 세모, 작은 세모, 납작한 세모. 어쨌든 세모 모양인데 우리 자매는 각자의 성향대로 네모, 세모, 동그라미야. 달라도 너무 달라. 아! 사랑으로 키운 거 그건 인정. 부모님 사랑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사는 거 같다고 생각해 나도!”


영희 말이 끝나고 영희와 선희는 맥주 캔을 부딪히며 한 모금 마신 뒤, 마른안주를 씹었다. 미희도 오른손에 쥐포를 들고 멍하니 식탁 한 곳만 쳐다보며 말을 시작했다. 

 “나 대학교 친구 혜원이 알지?”

 “응 알지! 그 엄청 예쁘게 생긴 언니?”

 “어어 맞아. 걔가 어느 날은 나보고 빛이 난다며 부럽다고 나처럼 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어. 자신은 돼지우리에 사는 뚱뚱하고 더러운 돼지 같은데 나보고 넓은 초원을 달리는 말 같다며 자유로워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고. 걔는 자라면서 엄마의 틀이 너무 강했대. 걔가 첫째였고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는데 첫째는 의사를 시키고 둘째는 변호사를 시키고 싶으셔서 어릴 때부터 공부 공부 했나 봐. 혜원이한테 엄마는 몸이 아프니까 네가 꼭 의사를 해서 고쳐줘야 한다며 세뇌시키고 동생한테는 변호사를 시켜야 하는데 사춘기 때 남자아이라 통제가 안되니까 엄마가 다 같이 죽자고 칼도 들었다가 불도 지른다며 난리도 아니었대.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애들 공부시켜 잘 키워보자 뭐 그런 생각이셨나 봐. 육체적, 정서적 학대는 물론이고 공부하라고 방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했고 시험 보고 틀리면 틀린 개수 대로 맞고 문제집도 다 외우고 있어야 하고 잠도 안 재웠대. 어릴 때 착하고 공부도 곧잘 했는데 학대가 심해지니까 오히려 어그러져서 우울증에 폭식증, 거식증으로 고생하고, 둘째는 남자 앤 데 자실시도 여러 번 했다가 요즘에는 그냥 집에서 폐인처럼 게임만 하면서 산다더라.”


 “아.. 인생 진짜 뭣 같네 씨발!....... 으흐흐 너무 슬프다 언니”


 영희는 술을 많이 마셔 취하기도 했고 욕을 하며 화를 냈다가 두 손을 얼굴로 가리며 ‘너무 슬프다 언니’ 하며 우는 시늉을 했다가 정말로 울기도 했다. 영희의 갑자기 커진 목소리에 자고 있던 하준이 깼다. 선희는 달려가서 하준이를 안아 주었고 일어난 김에 화장실에 다녀오자며 하준이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미희는 영희에게 취했다며 하준이 나오면 너도 들어가서 씻고 나와 자라며 식탁을 정리했다. 

 미희는 혜원의 과거를 들은 이후부터 과거에 대해 아쉽다느니 되돌리고 싶다느니 말을 그만두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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