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화동오로라 Sep 29. 2024

행복하지 않은 결혼식



 미희와 정태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북촌마을 한옥을 빌려 스몰웨딩으로 결정했고 직계 가족과 친한 친구 두세 명만 참석하여 간소화하기로 했다. 양가 모두 합쳐 30명. 미희의 드레스는 웨딩 샵에서 10만 원에 구매했고 정태의 정장도 아웃렛 남성복 매장에서 10만 원 남짓으로 구매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하고 본식에 스냅촬영과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했다. 메이크업은 한옥웨딩과 협업으로 있는 출장 헤어, 메이크업을 받기로 했다. 플래너 없이 신랑과 신부가 준비하고 가족들이 사회를 보고 축가를 하고 주례를 하는 결혼식, 드레스를 잡아주거나 예식을 도와주는 헬퍼도 없다. 스몰웨딩이라기보다 거의 생략웨딩에 가까웠다.


 정태는 주민 센터 사업을 따내 헬스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등록 인원이 많아 직원이 두 명이 있었고 월급뿐 아니라 명절이나 생일에 보너스를 지급하고도 정태 통장은 매달 두둑하게 쌓여갔다. 헬스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쯤 양가에서 결혼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갔다. 올해 초 주민센터와 서로 조건을 맞춰 협의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았고 그즈음 정태는 10년 전 수술했던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걷는 것조차 힘들어 며칠을 누워 있다가 병원을 찾았고 재수술 이야기가 나왔다. 양가에서 오갔던 결혼 이야기가 뜸해졌고 정태도 미희에게 결혼하자 먼저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미희가 용기를 냈다, 결혼하자고.


 미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강남, 청담으로 드레스 투어를 다니고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은 기본, 결혼 전 호텔을 빌려 신부와 친구들이 모여 벌이는 파티 브라이덜 샤워도 이제는 필수가 되었다. 신혼집은 최대한 대출을 받아 인천이나 남양주, 서울 외곽 신축아파트를 매매하거나 서울의 몇 안 남은 노른자 투자처라는 오래된 아파트를 매매해 리모델링해서 들어가기로 했고, 가전도 모두 새것으로 맞추고 새 차를 뽑는다는 계획과 신혼여행은 하와이를 가거나 유럽을 간다고 했다. 친구들의 경제 수준이 미희보다 월등히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다는 건 다 옛날이라며 어차피 10년 뒤, 20년 뒤 갖춰 가야 한다면 미리 당겨서 시작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의견이었다. 미희는 모임에서 대체로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스몰웨딩에 신혼여행은 제주도, 신혼집은 빌라 전셋집. 하나하나 결정해 가는 과정에서 미희는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평생 한번뿐인 결혼인데 스튜디오 촬영도 하고 싶었고 크고 넓은 결혼식장에 친척과 지인을 가득 모아 화려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그에 반해 정태는 레스토랑에서 가족끼리 식사만 하자고 했다. 당분간 미희의 수입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니 간략한 결혼식을 원하는 정태의 마음과 그래도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것들은 했으면 하는 미희의 마음. 두 마음이 종종 충돌했다. 그만 두자고도 했고, 여기까지 인가보다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파혼은 아닌 것 같다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화려한 결혼식을 원했던 미희, 가족과 간단한 식사만 원했던 정태, 스몰웨딩은 좋은 합일점 같아 보였지만 어쩌면 둘 중 누구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한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양보하더라도 가전이나 가구, 신혼여행 이런 건 신용카드 결제로 몇 개월 할부로 빚을 내서들 한다는데 미희는 남들 하는 대로 좀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희 목소리가 높아지니 정태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정태는 분수껏 살고 싶다고 말했다. 분수에 맞게, 주제에 맞게. 주제와 분수를 운운하는 말들이 대부분 남을 깎아내릴 때 말이라 부정적이 어감이지만 사실은 현명한 말이라며  미희를 설득했다. 최후에는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불편하다, 내 역량이 아닌데도 여기저기 끌어다 쓰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침묵이 흘렀다. 


 다른 이유를 떠나서 정태 본인이 싫다는 단호한 태도에 미희는 다른 어떤 근거를 대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팔짱을 끼고 입술을 다물고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은 미희를 정태가 쳐다보았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한껏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불편하다’, ‘싫다’ 뱉은 말이 미안해져서 정태는 미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미희의 팔짱 낀 팔을 풀어 오른손 하나를 정태는 두 손으로 잡았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빚을 내지 않고도 이것저것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지면 나중에 리마인드 웨딩으로 드레스도 많이 입어보고 사진도 찍고 초대하고 싶은 사람도 많이 초대해서 파티처럼 못해 봤던 거 그때 해보자고 그때까지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했다.


 미희는 고개를 들어 정태를 바라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참았던 눈물도 주룩 흘렸다. 정태는 그런 미희가 고마워서 안았고 정태의 한쪽 어깨에 턱만 올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미희를 토닥토닥 계속 달래주었다. 미희의 축 늘어져 있는 두 팔도 이내 정태의 등을 감쌌고 둘은 더 꼭 끌어안으며 다시 힘을 내어 남은 결혼 준비들을 하나 둘 해치워갔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힘들었고,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은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다들 결혼식 때는 행복해 보이던데, 이런 길고 긴 험난한 과정을 겪어낸 결혼식이었다는 걸 미희는 새삼 깨달았고 무사히 결혼식을 치른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였던 청첩장이, 매번 똑같아 보이는 예식장이, 내가 알던 언니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드레스가. 모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것임을 절절히 깨달았다.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부부가 되는 첫 번째 과정임도 깨달았다. 


*


 결혼식 당일, 예식은 한옥 마당에서 진행했다. 단상이 되는 부분 벽면 전체를 생화로 꾸몄고 길고 하얀 천 여러 장으로 하늘을 설핏 가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천들이 넘실대고 그때마다 파란 하늘이 얼핏 보였다. 하객들이 앉는 의자도 하얀 천으로 감쌌고 등반이 부분에도 생화를 꽂았다. 양복차림의 정태와 발끝에서 떨어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미희, 두 사람은 한옥웨딩과 잘 어울렸다. 초대한 손님들이 모두 들어와 자리에 착석한 이후에 식이 진행된다. 예정된 시간보다 10분이나 지나서 예식이 시작되었지만 하루 동안 한옥을 사용하기로 한 터라 조급함 없이 느긋하게 하객들이 오길 기다렸다. 초대한 하객이 모두 도착하여 자리에 착석했고 곧이어 예식이 시작되었다.  

 피로연은 한옥 실내에서 진행했다. 긴 탁자에 하얀 테이블보, 테이블 가운데는 화병에 생화가 풍성하게 꽂혀 있었다. 포크, 나이프,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초대된 사람의 이름이 접시 위에 놓여 있어 하객들은 이름을 찾아 각자 자리에 앉았다. 메인 음식들이 옮겨졌고 한쪽에 과일과 디저트를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었다. 미희는 피로연에 맞춰 분홍 원피스로 갈아입고 정태와 같이 테이블에 앉아 가족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다가 지인 테이블에서 디저트를 먹었다. 

 잔치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야 하는데 미희와 정태의 결혼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차분하고 조용해졌고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어른들은 이런 결혼식을 처음 경험해 보지만 오히려 작은 결혼식이 훨씬 좋다며 정태와 미희를 볼 때마다 칭찬을 했고 친구들은 한옥도 예쁘고 음식도 맛있다며 결혼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정태는 사람들 앞에서 자주 긴장했다. 결혼식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니 정태는 이미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고 그저 결혼식이 순서대로 아무 문제 없이 잘 끝나기만을 바랐다. 잘 누리고 아름답게 기억되어야 할 결혼식인데 정태의 긴장에 미희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결혼식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긴장이 풀어졌고 하객들의 좋은 평가에 마음도 그나마 편안해졌다. 식사를 마친 하객분들에게 인사를 다 마치고 가족들은 주차한 차를 가지러 간 상황, 미희와 정태 둘만 남았다. 경기를 다 끝내 기진한 복서처럼 정태는 한쪽 의자에 걸터앉았다. 정태에게 결혼식은 마치 시험장이자 고문장 같아 보였다. 


 정태가 왜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자고 했는지, 가족들끼리 식당에서 밥만 먹으면 안 되냐고 했는지 미희는 예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가을인데도 정태는 예식 내내 연신 땀을 닦았고 손과 발도 자주 떨렸다. 미희는 정태에게 다가갔고 앉아있는 정태를 서 있는 채로 안았다.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너 말을 들을 걸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무사히 끝났으니까 됐어, 네가 좋으면 됐어.” 정태는 진심이었다. 

두 팔을 들 힘도 없지만 다가와 준 미희를 안으며 정태가 말했다. 결혼식을 한 게 미안한 일이 되는 게 미희는 이상하고 서러웠다. 그 와중에 정태의 진심이 와닿아 심장도 찌릿하며 아팠다. 예식은 올리고 싶다고 주장했던 지난날이 후회되기도 했다. 미희는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났다. 정장을 입은 정태와 원피스 차림의 미희, 선선한 바람이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또 감싸 안았다. 

 한옥 마당을 덮은 하얀 천들은 넘실댔고 그때마다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맑고 청명했다.  



이전 07화 온 집안이 끙끙 앓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